유명한 희생자들도 적지 않았다. 궁형(宮刑)을 당해 남자 구실을 못한 ‘사기’의 저자 사마천(司馬遷), 아킬레스건이 잘리는 형벌을 당한 ‘손자병법’의 저자 손빈 등이 손꼽힌다. 그러나 가장 발군의 희생자는 단연 명나라 무종(武宗) 때의 환관 유근(劉瑾)이 아닌가 보인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수퍼리치로 꼽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부정축재를 일삼다 무려 4000번 가까이나 도륙이 되는 형벌을 받고 세상을 하직했다. 이 정도 되면 거의 고기처럼 슬라이스됐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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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중국의 이런 혹형의 전통은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혹자들은 인권 운운하면서 비난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국 같은 나라는 매년 4월 무렵만 되면 ‘중국인권보고서’를 통해 이런 혹형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과한 지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듯 생각을 조금 달리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국토가 대단히 넓다. 인구도 공식과 비공식 통계가 1억 명 가까이 편차가 날 만큼 많다. 독립을 지향하는 일부 소수민족의 저항도 장난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인권을 앞세우면서 법이 온정으로 흐르면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체제는커녕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혹형이 체제와 국가의 유지를 위한 필요악이라는 얘기가 된다. 또 최선책은 아니라도 차선책은 된다고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 역시 이 점에서는 크게 반발하지 않는 듯하다. 법이 느슨해서 나라가 개판이 되는 것보다는 꽤나 지나친 것 같은 혹형을 감수하고서라도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지 않나 싶다. 중국의 인권 변호사들이 최근 적극적인 반체제 활동을 하면서도 혹형에 대해서만큼은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일반 중국인들의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야 한다. 법이 물렁해서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고 있는 나라들이라면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한다고까지 하기는 어렵겠으나 어느 정도 참고는 할 만하다고 해도 좋은 것이 중국의 혹형이 아닌가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