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징바오(新京報)를 비롯한 중국 언론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왕치(王琪·79)라는 이 노인이 야기하고 있는 논란의 발단은 지난 1963년 1월로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과 인도 간의 국경 분쟁이 막 끝난 직후인 당시 그는 인민해방군의 한 공병부대에서 측량병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철수 직전 나선 산책 도중에 길을 잃는 횡액을 당했다. 게다가 일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그만 인도 영토로 잘못 들어가고도 말았다. 이로 인해 그는 인도에서 간첩죄로 7년 동안 수감되는 고초를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석방 후에도 중국으로 귀환하지 못했다. 대신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나그푸르시의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져 감금됐다. 할 수 없이 현지에서 공장 일을 하면서 인도 여성과 결혼해 자녀 4명을 두는 처지가 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는 그러나 현지에 사실상 정착했으면서도 고향인 산시(陝西)성 셴양(咸陽)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가족과 연락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기도 했다. 다행히 1980년대에는 가족들의 편지를 받고 생사도 확인할 수 있었다. 30여 년 가까이 지난 2014년에는 외조카의 도움으로 중국 여권 역시 받았다. 하지만 인도 당국은 그의 전쟁포로 신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출국을 불허했다. 그의 귀향은 계속 늦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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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극적인 반전은 그의 전우들이 보도를 본 후 서로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이뤄졌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가 탈영을 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심지어 일부 전우들은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가 조국을 등진 배신자라고까지 비난했다.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자 그의 직속 상관이었던 황(黃) 모 노인이 바로 나섰다. 그리고는 그가 길을 잃은 것이 맞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황상 탈영을 했다는 주장이 전혀 허황된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탓이다. 과연 그는 영웅인가, 배신자인가? 중국 정부는 그가 영웅이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