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은 당초 지난달 경영권 승계·노조·시민사회 소통 관련 반성 및 사과를 요구하는 준법감시위 권고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려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영환경 위기 등을 이유로 기한을 한 달 가량 미뤄 이날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 3월 11일 이 부회장과 삼성의 사과를 권고한 지 약 2개월 만이다.
특히 이날 대국민 사과에서 이 부회장이 “저는 제 아이들에게는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격적으로 밝힌 점은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면피용’ 사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도약을 위한 중대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과거 이병철 창업 회장부터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져 온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중단하겠다고 공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참모는 논의 과정에서 이 같은 답변 내용에 우려의 의견을 제시했으나 이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고, 이와 관련한 제 의지는 확고하다’며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앞서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경영권을 넘길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으나, 자녀 승계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삼성의 장기적인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을 염두에 둔 것으로 치열한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고 수준의 경영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경영 승계 대신 전문적 지식을 갖춘 전문경영인을 통한 경영 체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재계 1위인 삼성의 이러한 선택이 국내 대기업들에 미칠 파장에도 이목이 쏠린다. 이와 함께 이 부회장이 이날 ‘무노조경영’의 철폐를 약속하면서, 건전한 노사 문화 확산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이날 이 부회장은 10분 남짓한 기자회견에서 사과문을 읽는 도중 두 차례 허리를 90도로 숙여 사과하고, 퇴장할 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삼성이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해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는 대목과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사과한다는 대목에서였다.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책임과 관련해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사과한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 총수가 대국민 사과를 한 것도 1966년 이병철 창업주가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건희 회장이 2008년 차명계좌 의혹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이후 네 번째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이 이날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함에 따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과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가 내부 준법감시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꾸려졌고, 준법감시위가 권고한 대국민 사과를 이 부회장이 받아들일 만큼 실효적인 준법감시위가 가동되고 있음을 보여준 셈이기 때문이다.
한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7일 정기회의를 열고 이 부회장의 사과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위원들은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시민사회와의 소통 등 의제별로 이 부회장의 발표문을 평가하고 위원 간 의견을 조율할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