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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딜을 바라본 한 항공업계 관계자의 우려 섞인 말입니다. 양사 인수·합병(M&A) 거래가 수개월째 교착상태인 가운데 현산이 갑작스럽게 내놓은 입장문이 업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 대주주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지난 24일 “거래종결을 위한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재실사를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인데요,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한 달 전 회동 당시 “인수 의지는 변함없지만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밝힌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조치입니다.
현산 관계자는 27일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는 변함없다”면서 “당사의 입장을 밝혔으니 실사 실행 여부를 금호산업 측에서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현산의 속내를 알 순 없지만 업계에선 두 가지 시나리오가 나옵니다. 먼저 인수는 예정대로 진행하되, 대신 인수 금액을 대폭 깎으려는 시도라는 분석입니다. 당초 써낸 인수 금액 2조5000억원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실사를 통해 점검한 후 그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인수 금액을 삭감하고 동시에 정부로부터 금융 지원을 더 받겠다는 의지라는 것이죠.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계약 체결 이후 추가로 2조8000억원 늘었고, 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 차입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전 분기(1387%) 대비 4.5배 증가한 6280%에 달합니다. 재실사가 아시아나항공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깁니다.
또 다른 시나리오로 ‘노딜 선언을 위한 명분 쌓기’가 거론됩니다. 아시아나항공 측이 재실사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현산은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명분을 챙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수 불발이 현실화되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쪽은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입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딜로 끝나면 채권단은 새로운 매수자를 찾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분리 매각까지 검토할 것”이라며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했습니다. 최악의 경우 채권단 출자 전환을 통해 대주주인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을 떠안을 수도 있습니다. 제2의 대우조선해양이 되는 셈이죠.
정부 입장에서도 아시아나항공이 파산으로 가는 길만은 막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항공과 함께 국내 항공업계 양대 축인 아시아나항공이 사라지면 그만큼의 국제 장거리 수요를 외항사에 내주게 되기 때문이죠. 국가적인 손해인 셈입니다. 우리는 이미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사태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허 교수는 “당시 한진해운과 함께 국내 해운업계 양대 산맥이었던 현대상선이 있었지만 물동량을 흡수하지 못했다”며 “대신 머스크 같은 해외업체들이 시장 장악력을 높여갔다”고 말했습니다.
정 회장이 인수 딜을 놓고 장고를 이어가는 동안 1만여 명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다음달 말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한도 끝납니다. ‘일장춘몽’이 돼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꼬일 대로 꼬인 M&A, 이제 정 회장의 결단만 남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