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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상은 종교문화 활동 홍보의 하나로 천도교 중앙총부가 제작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공개된 영상은 춘암 박인호 선생의 출생과 성장 스토리 그리고 성인이 돼 해월 최시형과 의암 손병희와의 만남, 천도교에 입도하기까지 수련으로 단련하는 과정, 3.1운동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천도교 교단을 중흥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그렸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혼합한 방식으로 접근성을 높인 작품이다.
춘암상사 박인호 선생은 1883년 3월 18일 동학에 입교한 후 수련에 정진해, 충청도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수천명의 교인과 십여개의 포를 관할하는 동학의 지도자가 됐다. 1894년 9월에는 내포 지역 5만여명의 동학군을 이끌고 출전해, 당진 승전곡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싸워 첫 승리를 거뒀다.
박인호 선생은 해월 최시형 신사와 의암 손병희 성사를 모시고 동학혁명 이후 와해된 조직을 재정비하는 한편, 해월 최시형 신사가 돌아가신 후 제3대 교조가 된 의암 손병희 성사를 도와 3.1운동 등 보국안민을 위한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 지원과 함께 교육문화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선생은 3월 10일 독립운동자금 모집 혐의로 붙잡혔으며,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수형 생활을 마친 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해 조카 박래원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6·10 만세운동에 필요한 제반 지원을 했으며, 1927년에는 아들인 박래홍을 비롯한 많은 교인을 신간회에 참여시켜 활동하게 했다. 아울러 지병이 악화돼 활동이 자유롭지 않음에도 1938년에는 멸왜기도운동(滅倭祈禱運動)을 펼쳤다.
병석에 누워있던 선생은 멸왜기도운동을 끝으로 1938년 교단의 일을 권동진과 오세창, 최린에게 맡겼다. 그리고는 1940년 4월 3일 86세로 영면했다. 정부는 1990년 광복절에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