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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기 살고 싶다’는 북한군 포로 고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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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2. 0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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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체제와는 무관한 인간의 본성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장에서 생포된 북한군 병사의 말 속에서 이런 언어의 본성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 병사는 "우크라이나 사람들 다 좋은가요? 여기서 살고 싶어요. (북한에) 가라면 가는데…."라고 표현했다. 이는 강압적 북한 체제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자유로운 세계에서 살고 싶은 동경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 병사의 고백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자신이 모바일 메신저(텔레그램)에 공개한 동영상을 통해 알려졌다. 동영상은 북한체제 전체주의의 대내적 폭압성과 대외적 폭력성의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사지(死地)에서 싸우는 상대가 우크라이나인지 알지 못하고 파병됐다', '파병 수당이 얼마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휘관은 '훈련을 실전처럼 해 본다'면서 파병 동기를 숨겼다고 한다. 장병들에게는 모든 사실은 비밀이었고 은폐됐다. 이런 상황이니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선에 파견된 자신들의 처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모습이다. 물론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북한군 파병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다. 

 한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장에 파병된 북한군의 인력 손실이 매우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3일 국가정보원은 전장에 파병된 1만2000여 명 중 사망자는 300여 명, 부상자가 2700여 명에 달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파병 3개월 만에 4분의 1 가까운 병력이 전선에서 이탈한 셈이다. 이는 지난해 10월 처음 북한군이 파병될 때부터 총알받이로 소모될 것이라는 분석이 적중한 것이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면 추가 파병도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미 정보 소식통은 조만간 북한이 추가 파병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한 상태다. 

 북한의 대규모 사상자 발생의 표면적 원인은 '원거리 드론 조준 사격 및 후방 화력 지원 없는 돌격전술' 등 현대전에 대한 이해 부족과 함께 러시아가 북한군을 총알받이로 활용한 방식 때문이다. 물론 김정은은 총알받이 파병 사실 자체를 철저히 숨겼다. 그러나 대북소식통에 의하면 파병 가족들은 아들이 '노예 병'이나 '대포 밥'이 되려고 파병됐다는 사실에 분노를 삭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또한 이들은 '노예 병', '대포 밥'의 대가가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전용·악용된다는 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노예 병', '대포 밥'의 징후는 장병들이 유품 속에서 발견된다. 즉 희생된 북한군 장병의 수첩에서 '김정은 전투명령을 절대 관철', '생포되기 전 자폭·자결 강요', '전선에서 지속적 세뇌 및 사상교육' 등이 증좌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병사들에게조차 사실을 숨겼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 스스로 파병이 불법적이고 명분도 없으며 오로지 김정은 독재정권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임을 자인한 것이다. 물론 김정은 파병 목적은 막대한 통치자금을 마련하고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가 파병이 예견된 현실에서 인명피해도 커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런 현실에서 김정은의 과제는 파견사실을 통제·차단하고 체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체제에 불리한 정보는 통제·은폐·조작하는 폐쇄사회다. 아무리 폐쇄사회라고 하지만 명분 없는 전장에 끌려가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 이를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북한으로 귀국한 부상자의 입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 김정은의 고민이다. 대다수의 파병 군인은 20~30대이며, 이들은 저항의식이 강한 신세대라는 점이다. 따라서 파병장병의 귀국이 김정은 체제에 주는 충격은 작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전장에서 체험한 미약한 자유가 북한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은 뻔해 보인다. 이처럼 파병 장병의 귀국은 김정은 체제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며, 이를 통제할 수단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다.

 이번 동영상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파병은 명분도 없는 잘못된 것이라는 고발과 함께 이런 파병이 가능했던 근원은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며, 북한주민도 자유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의 책무는 북한에 자유가 활동할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런 절실한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북한에도 자유가 착근할 토양을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유통일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자유가 있어야 개인의 자기 선택권·결정권이 주어진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이다. 사실 김정은이 자유를 거부하는 본심은 자유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자유의 확산이 체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전체주의를 와해시키기 위해 북한지역으로 자유 확산과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북한에 자유의 가치를 북한주민들에게 전달해 자유의 가치를 인식하고 주민이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자유의 공동 지식(shared knowledge)을 확산을 통해 공동지식(common knowledge)으로 한 단계 도약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자유의 공동지식이란 '북한 주민이 자유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자기 선택권과 결정권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자유의 공동지식은 자유기반 통일의 디딤돌로 작용하면서 북한 주민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고  자유기반의 통일도 앞당기게 될 것이다. 

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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