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런 점에서 최근 삼성전자가 다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는 건 고무적이다. M&A도 재개했다. 유럽 최대 공조기업인 독일 플랙트를 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하며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8년 만에 대형 M&A에 나섰다. 이번 거래는 이재용 체제에서 추진하는 두번째 대형 M&A다. 플랙트는 데이터센터 전용 고효율 냉각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고성능 컴퓨팅(HPC)과 AI 서버 수요가 급증하면서 냉각 기술은 AI 인프라 경쟁에서 핵심 자산으로 부상 중이다. 사실 규모만 놓고보면 이번 M&A는 '삼성'이라는 이름값에는 못 미친다. 100조원이 넘는 '실탄'을 감안해도 그렇다. 하지만 이번 M&A가 본격적인 '투자 재개'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행보라 평가할 수 있다.
M&A 재개 만큼이나 주목할 건 이재용 회장의 행보다. 2022년 말 회장 취임 이후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던 이 회장은 최근 안팎으로 분주히 뛰기 시작했다. 올해 초 9년 만에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열린 세미나에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를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그의 행보엔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지난 3~4월 중국, 일본을 찾아 팀 쿡 애플 CEO,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 등 글로벌 기업 '빅샷'들과 연쇄 만남을 가진 것도 상징적이다. 정중동(靜中動)의 리더십에서 실질적인 실행 중심의 리더십으로 전환했다는 평가를 받는 행보다.
이 회장의 리더십 스타일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중요한 결정권은 쥐되, 현안에 대해선 한 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엔 주요 사안과 미래 전략에 보다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는 멈춰선 안 된다"는 그의 발언도 말에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대형 M&A와 선제적 투자를 통해 그 의지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아직 삼성의 위기는 진행형이다. 실적이 좋지 않다. 하지만 삼성의 시계는 다시 움직이고 있다. 그 시계의 분침과 초침이 더 빨라졌으면 한다. 플랜트 인수에 이어 더 크고, 굵직한 M&A도 기대하고 싶다. '글로벌 인맥왕'으로 통하는 이 회장의 거침없는 행보도 이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