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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사냥 합법화 추진한 연해주 정치인 망신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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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블라디보스토크 통신원

승인 : 2025. 05. 22. 13:58

"사람 탓에 먹이 줄고 밀렵꾼 공격으로 부상당해 먹이 찾아 민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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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일(현지시간) 러시아 하산스키 지역 바라바시 근처에서 잡힌 시베리아 호랑이가 이틀간의 치료를 받고 먹이가 풍부한 야생으로 풀려나고 있다./타스 연합
아시아투데이 이상현 블라디보스토크 통신원 = 러시아 극동 연해주 주의회 의원이 주민 거주지에 호랑이가 나타나면 신고 전에 즉각 총으로 쏴 호환을 예방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주의회에 제출했다가 망신만 당했다.

입법안 제출 소식이 알려지자 주의회 동료 의원들은 물론이고 연해주 시민들, 전국의 누리꾼들이 해당 의원의 시도를 비난했고, 동물보호 전문가들은 "호랑이를 인가로 불러 들인 것은 바로 밀렵꾼들"이라고 강하게 입법취지를 반박했다.

러시아 극동지역 매체 보스토크미디어는 21일(현지시간) "연해주 입법부 의원인 레오니드 바슈케비치가 인구밀집지역에 접근하는 아무르 호랑이를 사냥하는 것을 허용하자고 제안한 뒤 여론의 뭇매를 혹독하게 맞고 있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러시아 공산당 소속의 연해주 주의회 의원인 바슈케비치 의원은 연해주 의회 연설에서 "아무르호랑이센터가 지난 15년 동안 야생에서 94마리의 호랑이를 제거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1년에 1.5마리의 호랑이만 제거된다는 뜻"이라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호랑이를 간단한 절차로 죽이자고 호소했다.

그는 러시아 하원인 국가 두마 의장 뱌체슬라프 볼로딘에게 호소장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주의회 의원들은 그의 법안에 대해 "대형사고"라며 경악했다. 심지어 그와 같은 러시아공산당 소속 의원들조차 손사래를 쳤다. 법안은 결국 제대로 심의도 거치지 못했다.

비판의 핵심은 그의 법안이 밀렵꾼들의 입지만 정당화 해줄 뿐이라는 것. 법안이 입법되면 사실상의 '호랑이 사냥 허가'가 될 수밖에 없고, 밀렵꾼들은 닥치는대로 호랑이를 죽인 뒤 "그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려 했다"며 드러내놓고 탈법행위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호랑이를 죽여야 그렇지 않은 호랑이 개체수도 보호할 수 있다는 식의 접근으로, 사실상 밀렵을 합법화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산에서 호랑이를 죽인 뒤 호랑이 사체를 마을로 가져와 "이 호랑이가 여기에 나타나 사람을 위협해 죽였다"고 주장할 게 뻔하다는 비판이다.

러시아 누리꾼들은 "94마리가 15년동안 제거됐다면 한해 6.27 마리이지 어떻게 1.5마리냐"며 "산수도 못하는 정치인"이라고 비웃었다. 러시아 소셜미디어에서는 '15년동안 연해주 호랑이 94마리를 죽이는 이상한 나눗셈'이라는 글이 급속하게 퍼졌다.

일부 누리꾼은 "바슈케비치 의원은 아무르 호랑이를 악용해 극동 러시아의 안전보장을 불안하게 만들려는 외국 세력들의 음모를 돕고 있다"는 음로론까지 제기했다.

바슈케비치 의원은 지난 2022년 5월 "고아를 양산하는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중단하라"고 주장, 이를 지지한 동료 러시아공산당 소속 주의원과 함께 당에서 출당조치되고 실정법 위반으로 벌금도 물었다. 그러다보니 호랑이를 이용한 색깔혁명론자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한편 동물보호 전문가는 호랑이가 민가에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인간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야생동물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유명한 프리모르스키 감독 올렉 카발릭은 "1990년대부터 호랑이의 상황을 관찰해 왔으며, 현재 포식자가 사람에게 접근한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는 실제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9년 이후 돼지열병 유행으로 호랑이의 주요 먹이인 멧돼지의 개체 수가 90%나 감소, 포식자들이 다른 먹이를 찾아야 했고, 인구 밀집 지역에 더 가까이 이동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밀렵꾼들이 호랑이에게 부상을 입혀 더욱 사냥이 어려워진 호랑이가 먹이활동을 위해 민가로 온다는 사실도 검증됐다"고 덧붙였다.
이상현 블라디보스토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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