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단편, 하이브리 인형극으로 재해석
방관과 외면 속에서 만들어진 비극의 구조
인형과 배우가 함께 엮어내는 샹린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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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축복'은 이 불편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이 작품은 루쉰의 동명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인형과 배우가 함께 무대를 구성하는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재창작됐다. 공연창작소 숨이 제작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이번 공연은 '공연예술창작주체 지원사업'의 지원작으로, 고전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작품의 중심에는 '샹린댁'이라는 여인이 있다. 가난한 농가에 시집온 뒤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에게 팔릴 뻔한 그녀는 가까스로 도망쳐 하녀로 살아간다. 이후 강제로 다시 결혼하게 된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도 불의의 사고로 잃는다. 그녀의 삶은 끊임없는 착취와 비극의 연속이며, 끝내 거리에서 굶주림 속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비극은 개인의 운명을 넘어, 방치와 외면 속에서 만들어진 공동체의 실패로 읽힐 여지를 남긴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루쉰(魯迅, 1881-1936)은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이자 비판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일본 센다이 의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그는 어느 날 수업 중 시청한 영화에서 중국인의 무력하고 패배적인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신체보다 정신을 일깨워야 한다는 확신으로 문학의 길로 전환했다. 이후 '아Q정전', '축복', '고향', '공을기' 등에서 중국 사회의 모순과 민중의 고통, 사상적 억압을 담담하면서도 직설적인 문체로 풀어내며, 20세기 동아시아 문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연극 '축복'은 이러한 루쉰의 문제의식을 오늘의 무대 위로 불러온다. 특히 배우와 인형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하이브리드 인형극'이라는 형식은 주목할 만하다. 인형은 현실을 은유하면서도 때론 배우의 감정선을 분리해내는 장치로 기능하고, 배우의 움직임은 인형을 통해 배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관객에게 감정적 거리감과 몰입을 동시에 유도하며, 이야기의 구조적 함의를 보다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무대는 20세기 초 중국, 청 왕조의 몰락 이후 신해혁명 전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봉건적 질서와 유교적 윤리의 억압이 만연한 가운데, 샹린댁이라는 인물을 통해 가부장제의 현실과 여성의 소외, 그리고 신앙과 사회적 도덕이 결합한 '죄의식의 구조'가 드러난다. 그녀는 축복받지 못한 이로서 공동체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그 축복의 부재는 곧 자아의 해체로 이어진다.
연출은 정욱현, 각색은 이주영이 맡았으며, 무대(백이준), 조명(조성현), 음악(고태우), 안무(조아라) 등 각 분야의 제작진이 긴밀히 협업해 밀도 높은 무대를 완성했다. 인형 제작과 움직임 지도에는 각각 이수정, 김경란이 참여했으며, 배우의 연기와 인형의 퍼포먼스가 결합하는 특별한 감흥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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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목인 '축복'은 본래 중국 전통에서 새해 복을 기원하며 올리는 제의적 의식을 뜻한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이 말은 역설적으로 가장 비축복된 인물에게 붙여진다. 축복의 폭죽 소리가 울릴 때, 샹린댁은 거리에서 굶어 죽는다. 제의에서 배제된 자, 공동체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존재를 통해 이 작품은 '축복'이라는 개념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축복'은 관객에게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인물의 몰락을 지켜보는 그 시선 속에서, 각자가 내면의 질문을 마주하도록 유도한다. 누구의 삶이 '타인의 일'로만 남아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 공연이 단순한 감상이나 동정이 아닌, 생각의 틈을 만들어주는 시간이 되길. 그리고 샹린댁이 축복받는 그 순간이, 무대 밖 어딘가에서도 작게나마 울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공연은 7월 2일부터 6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