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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이경규의 양심냉장고, 그리고 약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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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준 기자

승인 : 2025. 06. 29. 19:02

이경규, 약물운전 국민 의식 형성 중심에
약물운전에 대한 명확한 기준 선행돼야
최민준님 증명규격
90년대 후반 방영된 공익 예능 '양심냉장고'는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공중도덕과 질서, 법규에 대한 무관심을 돌아보는 계기였다. 늦은 새벽 아무도 없는 거리의 신호 정지선에 정확히 멈춘 차량은, TV 너머에서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양심과 경각심을 동시에 일깨웠다.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연예인 이경규는 파장에 힘입어 국민 MC로 자리 잡았다.

30여년 후 이경규는 다시 한 번 대중들의 경각심을 건드렸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에서 약물을 복용한 채 운전하다가 경찰에 적발되면서다. 간이시약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검사 후 결국 입건됐다. 이씨 측은 경찰 조사에서 공황장애 약을 먹고 운전대를 잡은 게 원인이라고 해명했으며 부주의를 사과했다.

이번 사건은 대중들에게 약물운전의 개념을 깊이 심어줬다. 마약만 '약물'이 아니며 공황장애 등 보통의 의약품도 운전을 방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약물운전의 위험성과 예방책을 더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그러나 약물운전의 기준은 모호하기만 하다. '정지선'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던 양심냉장고와 달리 어떤 약물을, 어느 정도 복용해야 운전에 위험하다는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도로교통법은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지만, '우려가 있는 상태'에 대한 농도, 수치, 행위 등 명확한 기준은 생략돼 있다.

모호한 기준은 더 모호한 해석을 불러온다. 현행 규정으론 신경안정제, 감기약만 복용해도 범법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려가 있는 상태'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현장 경찰에게 맡겨야 한다. 운전자들 사이에선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자신이 약물운전자가 될 지 모른다는 걱정 섞인 반응이 나온다. 사정이 다르고 경중이 다르니 약물운전자들을 똑같이 처벌 대상으로 놓기엔 형평성이 떨어진다. 적발될 때마다 국과수 정밀검사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간이시약검사마저 강제화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지난 4월 도로교통법이 일부 개정되며 운전자가 경찰의 간이시약검사를 거부할 경우 처벌이 가능해졌다. 이 규정은 2026년 4월 2일부터 시행된다. 마약 근절을 위한 때와 장소에 관계없는 엄격한 검사의 필요성엔 공감한다. 그러나 일반 약물도 범주에 드는 만큼 확실한 기준이 정해져야 한다. 가벼운 사고나 위반 단속으로 끝날 상황이 약물운전으로 확대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유비무환. 미리 준비가 돼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 일부 의사들은 이번 논란이 정신과 약 복용자에 대한 불필요한 낙인과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한다. 약 복용을 망설이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약물운전 처벌은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뿐이다. 노르웨이는 약물운전의 혈중 농도를 규정한다. 약물별 기준도 달라 치료를 위해 처방을 받은 개인에겐 완화된 기준이 적용된다. 약물운전 공론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하다. 구체적 규정이 선행될 때 약물운전에 대한 국민적 인식도 확고히 자리잡을 것이다.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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