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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대통령의 ‘K-의식주’ 소임(所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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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6. 30. 17:57

이경욱 실장님-웹용
논설심의실장
최근 인도네시아 중학생과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호주에서 놀러 오는 관광객 친구들로부터 영어를 배웠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은 싫다"고 잘라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한국은 너무 타이트(tight)하다고 들었다. 사는 게 너무 치열한 것 같다"고 답했다. 열심히 살아야 잘 살 수 있지 않겠느냐,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것은 국민 모두가 힘을 내서 일하고 공부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K-팝도 있고 K-뷰티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한류는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각은 확고한 듯했다. 그 학생은 북한이 있다는 것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존재도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국에 대한 그의 이미지는 단순히 10대의 근거 없는 판단은 아닌 듯했다. 인도네시아 섬 지방에서 사는 그 학생은 자기의 현재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다만 유학이나 이주의 기회가 생긴다면 호주나 이탈리아 등 더 여유 있는 나라를 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화를 끝내고 발걸음을 돌리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 10대에 비춰진 우리의 모습은 각박함 그 자체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의식주(衣食住)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3가지 요소인 옷과 음식, 집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다. 이 3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기초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의식주에 대한 소임은 국민 모두가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확보에 최소한의 부담을 지우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대통령 부인이 해외 순방을 할 때든지, 아니면 민생의 현장을 방문할 때든지 평범한 국민의 눈높이를 벗어나는 옷차림은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대통령 부인의 옷차림은 늘 국민적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부인의 옷차림 논란이 끊임없는 것을 보면 그렇다. 공산품인 의류의 가격 안정을 위해 공급망 등을 잘 정비하는 일도 긴요하다.

식(食)은 매일매일 안정적으로 가격 부담 없이 공급돼야 한다.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처로 출장을 다녀온 30대 직장인은 "소득에 비해 먹거리 가격이 싸다"고 잘라 말했다. 독일인들은 먹는 것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독일 유학생들은 빵, 우유, 계란 등 식료품 가격이 비교적 안정돼 있다는 게 독일 유학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기숙사비나 학비가 미국 등 다른 나라보다 저렴하다고 입을 모은다.

2년 전 가본 인도네시아의 밥상 물가는 그사이 한참 오른 듯하다. 김밥 굵기가 가늘어졌고 가격도 꽤 올랐다. 맛도 예전 같지 않았다. 리모델링에 자본을 대거 투입한 탓인지 식당 분위기는 훨씬 쾌적해졌다. 그러나 맛이나 양은 옛날 얘기가 됐다. 우리의 밥상 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불과 1년 전 1만원이면 해결됐던 여의도 점심값이 1만5000원을 넘는다. 콩국수 가격은 1만6000원까지 올랐다. 사정이 이쯤 되면 고액 연봉자라고 해도 밥상 물가가 주는 중압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통령의 식(食)에 대한 소임은 바로 물가, 특히 생필품 가격 안정이다. 물가가 불안하면 국민이 불안하다. 먹거리 가격이 치솟게 되면 없던 주름살이 생겨난다. 공급 체계의 정비, 정부의 과감한 투자 등으로 먹거리 유통구조를 단순화하고 투명하게 해 생산지로부터 소비자 식탁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한 가격 상승을 차단해야 한다. 상생협약을 맺고 지원금을 제공하고서라도 대기업 구내식당을 외부에 개방하면 어떨까.

대통령의 주(住)에 대한 소임은 부동산 가격 안정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는 나라에서는 정부의 철저한 관리와 계획이 뒷받침돼 국민이 예측 가능한 주택 구입에 나설 수 있다고 한다. 국민의 등을 따스하게 하려면 국민이 자기 소득수준에 적합한 주택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다양한 가격의 주택을 꾸준하게 공급하는 게 필요하다.

강남에서 시작된 아파트 가격 급등세가 주변 지역까지 밀어 올리자 정부는 서둘러 일정 수준 이상 주택 대출 금지라는 초강수를 뒀다. 갑작스러운 대출 중단으로 혼란을 겪는 일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예측 가능한 정책이 정교하게 맞물려가야 주택시장이 안정세를 이어갈 수 있다.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과 금융, 조세가 조화를 이뤄가야 한다. 금융 하나만으로는 주택가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임기 후 꼬박 5년간 국민의 세금으로 옷과 먹거리, 주거 문제를 해결한다. 나라의 지도자이니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없다. 다만 여건상 평범한 국민의 의식주에 대한 감각은 재임 기간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장 감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은 잘 입고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대통령을 칭송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인이 찾는 'K-의식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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