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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울시,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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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8. 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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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룡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장
서울시(시장 오세훈)에서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서울도서관 외벽에 '광복 80년, 서울의 기억'으로 이른바 '단지동맹혈서태극기'를 걸었다. 이 태극기는 안중근을 비롯한 12명의 지사가 단지동맹(斷指同盟)을 한 후 왼손 무명지(無名指)를 끊어 피를 모아 4괘 자리에 '대한독립(大韓獨立) 네 글자를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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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단지혈서기념엽서'
1909년 2월 26일(음력 2월 7일), 안중근을 비롯한 강순기·강창두·김기룡·김백춘·김천화·박봉석·백규삼·유치홍·정원주·조응순·황병길 지사가 동포사회의 반목을 해소하고 강력한 의병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생사를 같이할 것을 결의한 것이었다.

광복 후 정부는 나라를 잃지 않으려고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바친 일제침략기 의병부터 일제강점기 국내외에서 반일활동을 벌인 독립운동가에게 포상하고 있는데, 2025년 8월 1일 현재 독립유공자는 1만8258명이다. 출신지별로 보면, 경상도 4003명, 전라도 2669명, 평안도 2413명, 서울은 536명(경기도 한성부·경성부 483명, 서울특별시 53명) 등이다.

서울은 이름이 경기도 한성부·경성부, 서울특별시(1946년 9월~1951년 12월)였고, 경기도 고양·시흥·양주 일부 지역이 편입되었으나 국가보훈부는 1951년을 독립유공자의 출신지역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서울시는 광복 80주년 특별행사로 서울 출신 독립유공자 536명 가운데, 159명의 행적을 전시하는 한편, 그동안 묻혀 있는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정부에 포상을 신청하기로 한 것은 매우 뜻깊은 기획이었다.

서울시의 이러한 기획은 광복 80주년 서울시민위원회가 채택한 것으로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 신청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국립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에 연구를 의뢰했는데, 이번 광복절을 계기로 230여 명, 내년 광복절에 300여 명을 발굴해 포상을 신청할 예정이니, 지금까지 포상된 인원만큼 많다.

이번에 발굴·포상 신청을 하는 주요 인물을 보면, 경성부 창신동 출신으로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였던 박현환(朴賢煥) 지사다. 그는 1919년 2월 오산학교 설립자 이승훈(李昇薰, 본명 寅煥)에게 서울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비밀모임이 있음을 전해줬고, 1919년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과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의 기자로 활약했으며, 안창호의 흥사단 자매단체로 수양동우회를 설립해 활약하다 붙잡혀 4년여 옥고를 겪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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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환 지사(왼쪽)와 김영필 지사
김영필(金永弼) 지사는 경성부 숭인동 출신으로 3·1독립만세의거로 6개월의 옥고를 겪었고, 김영식(金英植) 지사는 경성부 방산동 출신으로 1919년 3월 1일과 3월 5일 탑골공원과 거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경고문(警告文)'을 작성해 배포한 혐의로 체포돼 그해 8월 30일 예심을 거쳐 11월 6일 무죄로 석방되었으나 8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박인선(朴仁善) 지사는 경성부 가회동 출신으로 1932년 9월 '경성적색노동조합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다 붙잡혀 1934년 징역 2년(유예 4년)의 옥고를 겪고, 1936년에 좌익 출판물 간행을 협의하다가 붙잡혀 오랜 심문 끝에 1939년 징역 3년(구류 600일)이 선고돼 고초를 겪었다.

독립운동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념이나 무죄, 면소 판결로 인해 포상자에서 제외된 경우가 있었으나 최근 이러한 제약이 해소되어 감에 따라, 독립유공자 인정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연구진, 서울시는 독립유공자 발굴활동을 지속사업으로 정해서 꾸준히 이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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