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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공무원은 근로시간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직원들은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밤새워 일하는 것은 '불법'이다. 예를 들어, 직원이 5명 이상인 스타트업에서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근로할 경우, 창업가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 장시간 근로가 불가피한 스타트업 현실에서, 직원들이 오래 일하면 창업가가 범죄자로 전락하는 구조다. 일하는 시간까지 규제하면 어떻게 새로운 혁신과 도전이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창업학 연구에서 혁신과 창의성을 촉진하는 핵심 요소로 자율성(Autonomy)을 꼽는다. 창업학의 권위자인 톰 럼킨(Tom Lumpkin) 교수는 기업가적 지향성(Entrepreneurial Orientation) 이론에서 "조직이나 개인이 기존의 제약을 넘어 혁신을 창출하려면, 자율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의 자유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이스라엘의 실리콘와디, 싱가포르의 원 노스(One North)와 같은 글로벌 혁신 허브들 역시 정해진 틀을 넘어선 창업가들의 자율적이고 열정적인 몰입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최고 대학을 나와 대기업을 마다하고 스타트업에 들어가 풍운의 꿈을 꾸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행 제도의 경직성 때문에 스타트업 직원들의 '무임금 초과 노동'은 암묵적 조직문화가 됐다. 그 결과 창업가의 비전과 꿈을 따라 열정을 바친 직원들이 오히려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억울한 현실이 펼쳐진다. 이에 좌절한 꿈 많던 청년들은 결국 더 안정적이고 큰 회사로 이직하는 길을 밟게 된다.
노동을 적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삶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성과를 통해 경제적 자유와 워라밸을 얻고 싶은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절대적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스타트업 분야에서 비현실적인 노동법으로 청년사업가들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현실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스타트업의 창업자는 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꿈과 혁신을 이루기 위한 여정은 주말과 휴가에도 계속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직자의 1시간은 전 국민 5200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창업자의 1시간은 경제 혁신과 국가 성장의 중요한 밑거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열정이 법적으로 보장받고 정당한 보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유연한 노동 환경이다. 창업자들이 더는 법적 리스크를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혁신에만 몰두할 수 있는 노동법 개정이 절실한 이유다.
물론 장시간 노동은 건강과 삶의 질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자체를 획일적으로 규제하기보다는 선택적 유연근무제 도입 등으로 다양성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밤새워 일하는 직원에게는 그에 맞는 확실한 보상을, 일찍 퇴근해 개인적 삶을 중시하는 직원에게는 충분한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유연근무제는 단지 노동시간의 단축을 넘어 개인의 생산성과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경영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도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매년 15조3000억원의 예산을 사용하며 스타트업, 벤처, 소상공인, 중소기업을 위해 정책 개발을 하고 직접 투자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창업생태계를 구축하려면 제도의 유연화가 절실하다. 기업과 직원이 스스로 일할 방식을 정하고, 열정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이 제공되어야 글로벌 경쟁에서도 앞설 수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는 역사적 흐름에는 동의한다. AI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의 절대적 노동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실용주의가 실질적인 유연근무제 확대와 연결되어 스타트업 생태계에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창업가의 열정이 처벌받지 않고,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영근 한국뉴욕주립대(SUNY Korea) 경영학과 교수
이영근 교수는…
한양대 경영대 졸업. 미국 템플대 경영학 석사.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경영학 박사. 박사 취득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영대 창업학 조교수로 근무. 서울대 경영대와 홍익대 미대 초빙교수 역임. 현재 한국뉴욕주립대 경영학과 조교수로 재직. 주요 연구 분야는 중소기업, 벤처기업, 창업교육 및 창업생태계. 2024년 세계중소기업학회 올해의 학자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