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이동노동자 위해 병물 자판기 도입
취약계층 접근성·위생성 향상…"물맛도 생수와 같아"
탑골공원, 이동노동자 쉼터 등 현장 체감도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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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아리수본부와 자치구 등에 따르면, 이상기후로 폭염의 강도가 더 거세지고 장기화되는 올해 서울시가 폭염 대응을 위해 도입한 '아리수 나눔냉장고' 사업이 현장에서 실질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서울시는 기존 쪽방촌 주민, 노숙인 중심으로 지원했던 병물 아리수를 이동노동자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이는 작년부터 이어진 배달·택배 노동자의 폭염 노출로 인한 사망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특히 이동노동자 쉼터에 자동판매기를 도입했다. 기존 1대에서 21대로 확대 운영한 결과, 폭염 취약계층의 접근성과 위생성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폭염대비 재난취약계층에 17만3000여 병(7월말 기준)을 공급한 이번 사업의 핵심은 자판기형 무인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아리수본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아이스박스에 두고 물을 가져가도록 했는데, 자판기 방식으로 바뀌니 더 위생적이고, 한 번에 여러 병을 가져가는 일이 줄어들어 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자판기는 버튼을 누르면 15~20초 대기 시간이 있어 과도한 취득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시의 아리수 지원 사업은 단순한 폭염 대응을 넘어 종합적 재난 대응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평가된다. 올해 총 50만병의 병물 아리수를 공급한 가운데, 이 중 11만병은 울산 울주군 수해, 경북 의성군·영양군 산불, 경기 여주시 수질사고 등 각종 재난지역에 신속히 지원됐다. 특히 재난지역 지원 11만병은 서울시가 수도권을 넘어 전국 재난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음을 입증하는 지표다. 3월 경북 산불부터 7월 수해까지 계절과 재난 유형을 가리지 않고 신속한 지원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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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탑골공원에서 폭염취약계층 어르신들을 위해 하루 1000~1700병을 선착순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조기 소진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르신들의 반응은 더욱 절실했다. 최병철씨(75)는 "여름엔 물이 최고다. 물맛도 파는 생수와 같다"며 "시원한 물을 마시기만 하는 게 아니라 목에 대며 열을 식히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춘희씨(77)도 "물 하나에 1000원이 넘는데, 이렇게 나눠주니 너무 고맙다. 우리 노인들은 수입이 없어 1000원도 큰 돈"이라고 털어놨다.
이동노동자들의 체감도는 더욱 구체적이었다. 정도일씨(30·배달업)는 "물 용량이 조금 아쉽다"면서도 "성인 남성은 한 번 들이키면 끝나지만, 자판기 조작이 쉽고 쉼터가 문을 닫았을 때 사용하기 편하다"고 평가했다. 김재희씨(43·도보배달)도 "은행이나 마트 가서 정수기 물 먹는 건 가능하지만, 이렇게 페트병으로 물을 직접 받을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등포구노동자 종합지원센터 하제인 사업추진팀 팀장은 현장 체감에 대해 "이동노동뿐만 아니라 취약계층 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영등포구에서 이곳을 이번 달부터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진입 문턱을 낮췄는데 많은 분들이 듣고 찾아오신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50만병 공급 실적과 17만3000병의 취약계층 직접 지원으로 폭염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있지만, 시는 정책 확대와 환경보호 사이의 딜레마도 고민하고 있다.
아리수본부 관계자는 "폭염이 매년 재난급으로 지속될 전망이지만,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억제 조례 개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물 공급과 환경 보호 두 가지를 모두 고민해야 해서 무분별한 확대보다 꼭 필요한 곳에 적정 규모로 지원하는 원칙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리수본부는 수질 신뢰도 357개 항목 검사와 100% 재활용 페트병 사용으로 품질과 환경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방침이다. 9월까지 운영되는 나눔냉장고 21곳의 성과가 향후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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