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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얘기에서 가장 유명한 경구(警句)가 '거위 깃털 뽑기'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이던 바티스트 콜베르가 "과세의 기술은 거위의 비명을 최소화하면서 가장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조세저항 없이 은근슬쩍 세금을 거두려면 급격한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로 국민들에게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거꾸로 빈수레처럼 소리만 요란하고 세수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세금정책을 가장 하책(下策)이라 할만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3년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올해 세법개정안의 정신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걷는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해 소득세 개편에서 총급여 3450만원 이상 중산층의 세부담이 늘어나도록 설계한 것이 화근이 됐다. 조 수석은 "한 달에 1만3000원 세금이 느는 건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얘기했지만 월급 200만원이 조금 넘는 서민층은 '거위 깃털' 얘기에 거세게 저항했다. 결국 정부가 5일 만에 총급여 5500만원까지는 세부담을 늘리지 않는 쪽으로 수정안을 내면서 백기투항 했다. 증세 자체보다도 납세자의 감정을 잘못 건드린 고위공직자의 경솔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지 잘 보여준 케이스다.
10여 년이나 지난 '거위 깃털론'을 다시 꺼낸 것은 올해 세제개편안에서도 비슷한 실수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가 발표한 양도소득세 과세대상인 대주주 요건 강화(종목당 50억원→10억원)와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정책이다. 두 가지 정책 모두 '깃털론'처럼 잡음만 요란할 뿐, 각각의 증세효과나 증시부양 효과는 쥐꼬리 수준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정부 세제개편안에 찬성해 온 진성준 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에 대해 국회의원직 제명을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거위 깃털론' 파문 당시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고 조 전 수석을 엄호했던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와 조 전 수석에 대해 야당의 해임 요구가 쇄도했던 것과 판박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강화하려 했던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에 대해 해임 국민청원이 등장했던 것과도 비슷하다.
이번에는 진 전 의장이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윤석열 정권이 훼손한 세입 기반을 원상회복하는 조치"라며 "이러면 주식시장이 무너질 것처럼 말하지만 과거 선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 투자자들의 공분을 샀다. 그가 과거에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했던 발언을 겨냥해 "운전면허도 없는 사람이 교통정책을 만드는 격"이라는 투자자들 비판도 쏟아졌다. 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10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대주주 기준을 정부안보다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추이를 지켜보며 숙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잠재 폭탄처럼 남아있게 됐다. 이미 민주당에 '반(反)시장 조세당'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정부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커지면서 '코스피 5000시대' 공약 달성도 더 멀어졌다.
거꾸로 배당소득에 대해 세금을 덜어주는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새로 도입한 것 역시 세부담 경감효과가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친다. 애초 이소영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배당성향 35% 이상인 상장사의 배당소득에 대해 분리과세를 적용해, 세율을 현행 최고 49.5%(지방세 포함)에서 27.5%로 낮추는 게 핵심이었다. 하지만 정부안은 3억원 초과 배당소득에 대해 최고 38.5%의 세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분리과세 적용대상 기업도 배당성향 40% 이상 또는 배당성향 25%이면서 직전 3년 평균 대비 5% 이상 배당을 늘린 상장법인으로 축소됐다. 지난해 기준 배당성향이 40%를 넘는 상장사는 254곳으로 전체의 9.8%에 불과하다. 주주수가 수백만명에 달하는 '국민주식'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제외돼 '무늬만 분리과세'라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당정이 부자증세라는 정치논리에만 매달려 '거위 깃털 뽑기'를 하려다가 자칫 '거위 배 가르기'로 귀결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
설진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