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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실적부진에 속앓이를 앓고 있는 패션업계의 최대의 난제는 이상 기후다. 가뜩이나 소비침체에 지갑을 열지 않은 소비자들이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옷을 미리 장만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그래서 1년 중 최대 매출이 기대되는 F·W 시즌을 앞두고 패션업계의 고민이 크다. 계절을 앞서 준비해야 하는 패션업계로서는 이상 기후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올겨울도 기존에처럼 10월 판매를 목표로 겨울 의류를 대량으로 풀지, 아님 시기를 늦춰야 할지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곳이 많다. 몇해 동안 '당한(?)' 전적이 있어서다.
지난겨울에도 최강 한파가 온다는 예보에 물량을 대거 풀었다 12월까지 이어진 따뜻한 날씨에 결국 해를 넘겨 재고정리를 해야 했던 아픈 전례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뚜렷한 '사계절(봄·여름·가을·겨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엔 애매해졌다. 여름을 대표하는 '장마'란 단어도 이제 '우기'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올봄에도 경계가 모호했다. 개나리·벚꽃이 만개한 4월에 때 아닌 눈이 내리며 봄과 겨울이 공존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운 경량패딩을 입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팔을 입기도 하는 등 '이 계절엔 이 옷'이란 고정관념도 깨졌다.
계절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3~5월은 봄, 6~8월은 여름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기존의 사계절 구분이 실제 기후와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아 각 계절의 시작과 끝을 새롭게 정할 필요성이 있다.
유통업계에서 현대백화점이 먼저 이 같은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주요 패션협력사 15개사와 모여 기후변화TF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매달 한차례씩 정기 TF회의를 진행하며 예측 불가능한 날씨로 어려움을 겪는 패션업체들의 고민과 문제를 교류하고 있다.
아직은 사회적 논의가 바탕이 되지 않은 만큼 시작은 미미하지만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두고 있다. 길어진 여름에 올여름 쿨소재의 반소매 티셔츠, 얇은 셔츠류, 쿨링 데님, 아웃도어 재킷이나 바람막이, 선글라스 및 양산 등의 핫섬머 기획상품과 신상품 물량을 늘린 것이 그 예다.
장마 기간에는 우산과 장화가 잘 팔린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스콜처럼 짧게 폭우가 내렸다 그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통기성 좋은 신발이 더 잘 팔린다. 폭염에 에어컨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한 여름에도 긴 재킷과 카디건 등을 찾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계절의 특성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이제 맞지 않다. 기후가 변함에 따라 계절의 정의도 재정립해야 한다.
이는 한 사람이, 어느 한 산업군에서 바꾸기는 힘들다. 이제부터라도 공론화시켜 새로운 계절적 정의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