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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라질 준비를 마친 전자섬유, 성능과 환경을 동시에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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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8. 13. 17:45

교수님 증명사진
강승균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
며칠 전 삼성의 갤럭시 Z 폴드7이 공개되자 전 세계 매장 앞에는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교체 이유는 단순한 고장이 아니다. 더 나은 카메라, 더 빠른 성능,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원하는 마음이 이 열기를 만든다.

이제 기술은 '필요'보다 '욕망'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평균 교체 주기는 3.7년에 불과하며, 고장보다 기능 향상과 최신 트렌드가 소비를 이끈다. 문제는 이 빠른 소비가 남기는 흔적이다. 2022년 전 세계 전자폐기물 발생량은 약 6200만 톤으로, 2010년 대비 82% 증가했다. 전자폐기물은 단순한 산업 문제를 넘어, 지역 사회의 생존 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인도 뉴델리 인근 발스와 매립지는 62m 높이의 '쓰레기산'으로 변했고, 주민들은 유독가스와 오염수로 인한 질환에 시달린다. 한 주민은 "매립지가 내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 이러한 상황은 스마트폰뿐 아니라 앞으로 급속히 확산될 새로운 전자기기-특히 '웨어러블 디바이스'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이제 손목을 넘어 피부 위, 그리고 옷감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자섬유(e-textile)"는 실과 직물 자체에 전자 기능을 부여해, 착용자가 입는 것만으로 데이터를 수집·전송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심박수를 상시 측정하다가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구조 신호를 보내는 헬스케어 의류, 군인의 생체 상태와 위치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전투복, 스포츠 선수의 근육 피로도를 측정해 훈련을 조정하는 스마트 유니폼 등이 있다. 일상에서는 사용자의 움직임과 환경에 맞춰 온도나 조명을 조절하는 패션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에도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이 제품들이 수명을 다했을 때 그 끝은 어떻게 설계돼 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성능과 환경을 양자택일처럼 여겨왔다. 더 좋은 성능은 환경을 포기하는 대가로 얻는 것처럼 인식됐고, '지속가능성'은 미래 과제로 미뤄졌다. 하지만 기후 위기, 자원 고갈, 해양 플라스틱, 미세먼지 문제는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이제는 "좋은 기술이란 잘 작동하고, 잘 사라지는 기술"임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기술개발은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 환경성과 성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시작부터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전자섬유도 기존 전자산업이 걸어온 '고성능-고폐기물'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생분해성 전자소자다. 사용 중에는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하다가, 수명이 끝나면 환경에 부담 없이 분해되는 기술이다. 최근에는 이를 전자섬유에 적용해, 전도성·유연성·세탁 내구성·생분해성·대량생산성을 모두 만족하는 시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도 이러한 접근을 기반으로 한 생분해성 전자섬유를 개발해, 다양한 움직임과 세탁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면서 폐기 시 친환경적으로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기술은 전자섬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유연하고 부드러운 전자소자 기술과 맞닿아 있어, 향후 인체와 밀착하는 헬스케어 기기, 의류형 센서 네트워크, 심지어 사람과 유사한 동작과 촉각을 구현하는 로봇형 소자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미래 산업이 요구하는 '착용감과 성능, 그리고 환경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기술은 늘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발전해 왔다. 이제 그 '더 나음' 속에는 성능과 함께 책임도 포함되어야 한다. 사라질 준비를 마친 전자섬유는, 우리가 기술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고 있다. 그 답은 성능과 환경을 함께 담아내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 분해성과 작동 수명을 조율할 수 있는 분해 속도에 대한 기초 연구, 생분해성 플라스틱 공정과 전자소자 제조기술을 융합한 제작 공정 개발, 그리고 산업 전반에서의 도입을 뒷받침하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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