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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초거대 AI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를 장악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바이두, 알리바바, 화웨이 등 빅테크를 앞세운 국가 차원의 '올인'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AI Act'를 통해 규제와 윤리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는 동시에 자국 내 기술 육성에도 속도를 높이는 중이다.
반면 한국은 그동안 네이버, 카카오, LG, SK텔레콤 등 민간 대기업이 각자 연구와 서비스를 이어왔다. 그러나 데이터 인프라·GPU 클러스터 같은 핵심 기반은 국가 차원의 뒷받침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 정부의 움직임은 그 공백을 메우는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AI의 중요성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혁신을 넘어 산업 전반의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생성형 AI와 거대언어모델(LLM)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같은 제조업에도 파급력을 미치며 국가 경제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한다. AI 주도권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로 정의되는 이유다.
다만 문제는 속도와 실행력이다. AI는 선점 효과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시장이다. 먼저 시장을 장악한 모델은 데이터를 축적하며 빠르게 고도화되고,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격차를 만든다. 이번에 후보로 압축된 기업·컨소시엄이 정부 지원을 발판 삼아 글로벌 수준의 모델을 상용화하고 산업별 응용 생태계를 빠르게 확장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기술 개발은 물론 데이터 확보, 인재 양성, 글로벌 파트너십까지 동시다발적 과제가 쌓여 있다.
그럼에도 기회는 남아 있다. 글로벌 AI 시장은 아직 완전히 고착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앤트로픽, 프랑스의 미스트랄 같은 신흥 기업의 부상은 '후발 주자'에게도 문이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반도체, 통신, 배터리, 제조업처럼 한국이 강점을 지닌 산업에서는 범용 모델이 아닌 산업 특화형 AI로 차별화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여기에 이번 정부의 지원은 그간 민간에만 맡겨졌던 인프라 공백을 메우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늦은 출발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해서 바로 실패라고 말하긴 어렵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의 속도'다. 한국이 AI 주권을 확보하고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을 넓히려면 이번 시도를 단발성 프로젝트로 끝내선 안 된다. 단기 성과에 그치지 않고 장기 전략과 과감하고 지속적인 실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금은 행동으로, 또 결과로 증명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