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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공연장의 '시야없음석'은 공연의 본질을 무너뜨린 사례였다. 무대를 보고 교감하는 경험은 티켓 가격의 출발점이다. 이런 기본 전제가 빠진 죄석을 정가에 내놓은 행위는 단순히 서비스 마인드의 문제가 아니라 K-팝의 신뢰를 흔드는 문제다. 데이식스 팬미팅에서 불거진 개인정보 요구 논란도 마찬가지다. 팬을 관객이 아닌 개인으로 존중하지 않을 때 본인 확인은 권리 보호가 아니라 권리 침해로 이어진다. '팬심'을 믿고 당연 시하는 태도가 이런 불합리를 낳는다.
이상의 사례들은 단순히 논란으로만 그쳐서는 안될 사안이다. 해외 주요 공연에서 좌석의 시야(view)는 티켓 가격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다.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좌석은 아예 판매하지 않거나 '제한된 시야석'으로 명확히 고지하고 가격을 낮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시야 없음'이라는 안내 문구만 부착돼 있다면 공연사가 책임을 다했다고 보는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은 관객이 불편을 감수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개인정보 요구도 다르지 않다. 팬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이해가 가지만 이를 내세워 과도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공연사의 편의를 위한 행동일 뿐이다. 다수 해외 공연장의 경우 입장 시 본인 확인 절차가 최소화되고 QR코드 스캔 등 간단한 방식으로 입장이 처리된다. 관객 편의를 우선하는 흐름이 자리 잡으면서 국내처럼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K-팝 산업의 성취는 팬덤의 충성심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 충성심은 무한하지 않다. 공연 현장에서의 작은 실망과 불신의 누적은 장기적으로 팬덤의 결속을 약화시킬 수 있다. 공연사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산업 자체가 자초한 불편이 성장의 발목을 잡는 현상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무대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좌석과 합리적이고 간결한 확인 절차, 그리고 자신이 지불한 값어치에 걸맞은 존중이다. 기본이 지켜질 때 팬심은 다시 무대 위 아티스트에게 향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공연 산업의 신뢰를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
'팬이라면 참아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공연사의 인식 전환이다. K-팝 공연 문화가 성숙해야 한다. 팬 경험을 존중하는 순간 공연장은 불만의 공간이 아니라 신뢰의 무대로 다시 태어난다. 그 존중이 쌓일 때 비로소 K-팝은 세계 무대에서 더 멀리 더 오래 나아갈 힘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