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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고문 |
노란봉투법에 대한 반대는 일부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경제 6단체는 물론이고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주한EU상공회의소 등은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한국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힐 정도다.
경제계의 노란봉투법 반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이 법이 통과되면 첫째, 사용자의 범위가 넓어져 하청업체의 노동단체의 교섭요구를 거절했다가는 감옥에 갈 수 있어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 둘째, 기업의 자산을 어디에 투자를 할지는 경영자의 고유한 권한인데 이에 대해서도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셋째, 외국에서는 파업 때 직장점유가 허용되지 않는데 우리는 이것이 허용되므로 회사의 재산상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는데 기업의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경제계의 노란봉투법에 대한 반대는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노란봉투법' 입법 의지는 이런 반대보다 더 확고해 보인다.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해서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 투자를 줄이거나 심지어 철수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런 우려를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입법을 막기 위한 '과장'혹은 '엄포'로 일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저명한 경제학자 알버트 O. 허쉬먼(Albert O. Hirschman)의 '로열티, 보이스, 엑시트(Loyalty, Voice, Exit)' 모델에 따라 검토해보자. 허쉬먼의 모델은 "머물 것인지 떠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데, 머물거나 떠나는 것 이외에 말(Voice)로 각종 불만을 표시하는 단계가 더 있는 게 특징이다. 이 경우에는 한국에 남아서 기업 활동을 계속할지 아니면 떠날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불만'을 말로 표현하는 단계가 들어있다.
지금 노란봉투법 입법과 관련해서 경제계가 보이는 반응이 바로 말로 불만을 표시하는 단계다. 사실 이런 말로 하는 경제계의 불만 표출은 더 이상 보탤 게 없을 만큼 충분히 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미동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의 지지 세력으로 간주하는 양대 노총이 원하는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킬 태세다. 그렇다면 이제 기업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한국에 대한 투자를 줄이거나 한국을 떠나는 '엑시트'밖에 없게 됐다.
스웨덴의 상속세 부과와 기업들의 탈(脫)스웨덴 과정을 보면 기업들이 탈(脫)한국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여길 수 없다. 그리고 사후약방문을 해서는 일자리 상실과 세수손실에 따른 피해가 너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경우 1884년부터 상속세를 부과했으며,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부의 재분배, 사회적 평등 추구 등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상속세율이 크게 인상되었다. 초기에는 스웨덴의 부유층과 기업들이 강한 애국심, 사회적 규범, 또는 세금 회피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높은 상속세를 감수하며 스웨덴에 머물렀다. '로열티'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상속세에 대한 불만 즉, 보이스가 터져 나왔고 1980년대 이케아 창업자와 같은 억만장자들이 높은 상속세를 피해 스웨덴을 떠나는 엑시트를 선택했다. 1984년에는 창업주가 사망한 후 70%의 상속세 부담을 못 이기고 스웨덴의 유명한 제약회사 '아스트라'가 영국 제약회사 '제네카'에 인수되기도 했다.
사실 한국의 대기업들도 한국 경제에서의 막대한 영향력과 역사적 뿌리가 있어서 한국에 남아 운영을 지속하려는 경향, 즉 로열티의 경향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등 경영환경을 악화하는 제도에 대해 아무리 말해도 안 되면 한국 탈출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도 완전 탈출보다는 해외공장 가동율을 높이거나 국내 투자를 줄일 것이다. 한국진출 외국기업의 경우에는 사업철수도 고려할 것이다. 최대 60%에 이르는 한국의 높은 상속세가 기업들의 자산 이전이나 이주를 이미 유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란봉투법과 같은 추가적인 규제는 기업들의 한국 탈출을 부추길 것이 틀림없다.
/김이석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