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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文香世談] 느긋함의 지혜, 나를 찾아 떠나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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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8. 2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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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그르니에는 명상 산문집 '섬'에서 현대인의 내면과 고립, 느림의 가치를 깊이 사유한다. 그에게 '섬'은 단순한 외부 세계로부터의 고립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을 마주하기 위한 통로다. "섬은 모든 것이 유예되는 곳이다. 시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르게 흐른다"라는 그의 말은 섬이 자기 자신과 조용히 마주할 수 있는 내면의 피난처임을 말해준다. 그 고요는 형벌이 아니라 은총이다. 사유와 성찰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다. 섬은 강박과 소음에서 벗어나 본질로 돌아가는 안식처이자, 현대인의 정신적 피로를 치유하는 성소다.

대학 시절, 나는 단지 '섬'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펼쳤다. 우울한 시대적 상황과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 고독을 흉내 내고 싶은 낭만적 욕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고독은 진정한 침묵도, 단절도 아니었다. 젊음이 허락한 객기 어린 지적 허영이자 감정의 유희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고 삶이 무거워진 지금에서야, 고독은 피하고 싶은 공백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내면으로 향하는 귀환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의 소음에서 물러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나의 진정한 욕망과 두려움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이 순간, 온전한 나로 존재하고 있는가? 이처럼 섬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허락하는 장소이자 시간이다. 고요 속에서야 비로소 나를 잃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운다.

느긋함이란 무엇인가? 그르니에는 "나는 모든 것을 유예할 수 있는 이 느긋한 삶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느긋함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집착하는 즉시성과 성과 중심의 사고방식에 대한 깊은 반성이다. 그는 "삶이란 조급함을 내려놓고, 시간을 유예하는 예술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속도에 중독된 지금에야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는 '더 빨리, 더 많이, 더 잘'이라는 압박 속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조차 묻지 않고 달린다. 방향을 잃은 채 속도만 높이는 삶은, 마치 목적지를 잊은 배처럼 흐름에 떠밀릴 뿐이다. 이처럼 조급함은 오히려 삶을 피상적이고 무의미하게 만든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그 답을 찾으려면 잠시 멈추고 속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아침 햇살이 머무르는 창가에 앉아 책장을 천천히 넘기는 그 고요한 순간에, 우리는 느긋함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기술이 인간의 삶보다 앞서 달린다. 그 속에서 우리의 사유 능력은 점점 주변화되고 있다.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정보를 쏟아내면서, 우리는 잠시 멈춰 생각할 틈조차 없이 그 흐름에 휩쓸린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스크롤하지만, 정작 우리 내면 깊은 곳은 들여다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사유는 이처럼 자동화된 소비의 흐름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느긋함은 단순한 느림이 아니라, 존재의 리듬을 재구성하고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철학적 결단이다. 속도와 성과가 전부인 시대에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곧 사유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되찾는 일이자, 삶의 깊이를 회복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정치적 논쟁이나 사회적 이슈에는 과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는 침묵한다. 중심을 되찾기 위해서는 소음을 잠시 꺼두고, 자신만의 '섬'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디지털 과잉 시대에 이 말은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세상과 과잉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과는 단절되어 있다. 그 단절을 회복하는 열쇠가 바로 '섬'이라는 공간에 있다. 물질과 정보로 가득 찬 세상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오히려 비움과 침묵일지도 모른다.

그르니에는 반복해서 '유예'의 가치를 말한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을 잠시 유예하라. 내면으로 향하는 느린 여정이 필요하다." 이 유예는 도피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여백이다. 무한 경쟁과 성과 중심의 사고방식은 우리를 점점 지속 불가능한 존재로 만든다. 느긋함은 그 흐름을 거슬러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선택이다. 그는 "모든 것을 멈추고, 자신만의 리듬을 회복하라. 느긋함 속에서야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나 더 빠른 결과가 아니라, 삶을 잠시 비워낼 용기와 속도를 늦추어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사유의 틈이다. "섬은 세상과는 다른 시간과 공간이다. 그 안에서 비로소 나 자신과 만난다." 이 문장은 단순한 철학적 은유를 넘어, 우리에게 던지는 실존적 요청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가 아닌 내면을 향해 닻을 내릴 '섬'이다. 그 섬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잊고 지냈던 '나'라는 대륙을 재발견하게 된다. 섬을 감싸는 잔잔한 파도가 내면의 소음을 밀어내고, 우리를 침묵의 해안으로 천천히 이끌어 줄 것이다. 잃어버린 방향을 되찾고 흩어진 마음을 모으는 그 고요한 섬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한 번쯤 당신만의 섬을 찾아 떠나보라. 그곳에서 마주하게 될 나도 몰랐던 '나'가 궁금하지 않은가? 섬에 닿는다는 것은, 결국 다시 나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여정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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