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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구 부총리는 "기업들이 경쟁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본시장으로 갔다가 부동산에 넣어둘 걸 하는 후회가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보다 부동산을 더 안정적인 투자처로 인식하는 듯한 태도는 정부가 추진해온 자산 구조 전환 정책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한국엔 부동산밖에 없다'는 불패 신화가 여전히 정부 핵심 관료의 인식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시장 중심의 '머니무브'가 단지 구호에 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정부는 부동산에 묶인 자금을 생산적인 주식시장으로 옮기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배당을 통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실제 세제 개편안은 그 약속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달 기재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 내용을 보면 부동산에 관한 세제는 건드리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부동산은 1가구 1주택 기준으로 12억까지 양도세가 면제된다. 10년 이상 보유 시 최대 80%까지 공제된다. 금액 상한도 없다. 반면 주식은 장기 보유에 따른 세제 혜택이 여전히 없다. 그나마 배당 소득 분리과세를 확대해주겠다고 나섰던 정부는 배당 성향 40% 이상 기업에만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건강보험료까지 포함하면 실질 세율은 50%를 넘는다. 거기다 배당소득 분리 과세는 3년 한시법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배당 확대에 적극 나설 이유가 없다. 이런 구조에서 부동산에 쏠린 자산이 주식으로 이동하길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본 시장 같은 변동성과 리스크가 큰 시장에서 국민이 손실을 감수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갖추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결국 구 부총리가 말한대로 투자 자금을 "부동산에 넣어둘 걸 하는 후회가 들지 않도록" 하려면 한국의 PBR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여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업의 기초 체력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세제 개편이라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수다.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는 제도와 인식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회복된다. 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를 진정으로 추진하려 한다면 정책의 일관성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향 전환이 아니라 방향 고수다. 흔들림 없는 정책 추진만이 자본시장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되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