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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이트] “디지털 전환(DX)이 바꾼 가업승계의 게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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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8. 28. 17:43

김찬복
김찬복 (아태지역경제연구원 이사장·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겸임교수)
디지털 전환(DX)은 이제 '혁신'의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언어다. 공장 안팎에서 자동화와 데이터가 경영의 골격을 다시 짜는 동안 기업의 재무제표도 달라졌다. 과거 설비와 재고 같은 유형자산이 중심이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소프트웨어·데이터·브랜드 같은 무형자산이 기업의 힘을 좌우한다. 그런데 기업승계제도는 여전히 옛 게임판 위에 서 있다. 현 제도는 유형자산 중심의 평가·과세 틀을 고수하면서 기술집약 기업에 과도한 세 부담을 안긴다. 후계자는 출발선부터 짐을 지고 달리는 셈이다. 산업의 목적이 '형태 유지'에서 '가치 창출'로 옮겨간 지금, 승계제도는 여전히 기업의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규제의 무게중심이다. 현행 가업상속공제는 7년간의 사후관리, 업종과 고용 유지 의무, 자산 처분 제한 등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 사이클이 짧아지고 산업 전환이 빨라진 현실에서 이런 조건을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기업이 급격한 환경변화에 살아남기 위해 고용 변동이나 업종 전환을 하는 것을 현 제도에서는 곱게 보지 않는다. "승계를 하라"면서도 정작 숨 쉴 공간은 주지 않는 셈이다.

기업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업종·고용 유지 의무를 산업 특성과 기업 규모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하고, 불가피한 변동에는 예외 규정을 두어야 한다. 공제 한도 역시 단순한 매출·자산 규모가 아니라 고용 창출, 기술 혁신, 사회적 기여 같은 '실질 기여도'를 반영해야 한다. 혜택을 받은 기업의 사후관리 성과를 공개하는 투명성 강화도 필요하다.

또 기업승계제도에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생전 승계다. 지금은 상속이 아닌 증여로 승계를 준비하면 세 부담이 더 크다. 기업주가 시간을 두고 경영권을 물려줄 유인이 없으니, 결국 뒤늦게 상속세 폭탄을 맞는 경우가 잦다. 증여세 과세특례 확대나 저율 과세 적용이 필요한 이유다.

'준비된 승계'야말로 고용 안정과 기술 전승을 담보하는 길인데, 이를 가능케 하는 증여를 현 제도가 막고 있는 꼴이다. 비상장주식 평가 방식도 손봐야 한다. 현재 제도는 미래가치를 과도하게 반영해 상속세 부담을 키운다. 기업의 수익성, 성장성, 산업 특성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현실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장부 위에서는 '비싸게 평가된 기업'이 정작 시장에서는 팔리지 않는 모순만 커질 것이다.

결국 가업승계의 본질은 "무엇을 잇느냐"에 있다. 유형자산이 아니라 데이터, 공정기술, 숙련 인력, 거래망 같은 무형자산이 기업의 생명줄이다. 가족 승계든, 제3자 승계든, 이 무형자산을 얼마나 잘 가시화하고 이전하느냐가 기업의 수명을 좌우한다. 기업승계를 위한 제도는 기업의 심판대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상속공제와 납부유예, M&A와 사전증여를 연결해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거래비용을 낮추며, 실패의 파급을 최소화하는 역할. 그렇게 해야 승계제도는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장치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은 속도의 경제다. 제도가 뒤처지면 사라지는 것은 세입 몇 줄이 아니라 지역의 일자리와 기술의 맥이다. 가업승계는 이제 혈연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으로 평가돼야 한다. 승계제도가 기업의 성장 플랫폼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창업주의 생애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기업, 지역과 산업을 지켜내는 기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찬복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겸임교수는…

아태지역경제연구원 이사장이자 사업전략 컨설턴트사인 APCG의 대표이사이다.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겸임교수로 있다. 25년여 간 현장에서 식품, 화장품 관련 회사경영과 자문을 해왔다. 특히 한국을 우회한 다국적기업의 중국 진출 관련 연구로 SSCI 및 KCI저널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역서로 중국 기업의 성공전략을 주제로 하는 '차이나 매니지먼트'를 출간하였다. 최근에는 기업의 경영문제에 대한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다수 기업의 M&A와 볼트온 전략, PMI 등을 수행하는 경영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김찬복 아태지역경제연구원 이사장·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겸임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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