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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엽의 ‘법과 경제’] 상법 개정, ‘법과 시장 간 균형’ 지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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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8. 27. 17:47

지인엽 동국대 교수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기업지배구조 및 회사법 문헌에서 오래된 논쟁 중 하나는 "무엇이 경영자의 행동과 의사결정을 규율하는가?"라는 문제다. 이에 대한 학계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상법과 같은 법적 규제와 그 집행력이 경영자를 통제한다는 '법 주도 가설'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시장·제품시장·경영자 노동시장 등 외부 경쟁 압력이 법보다 경영자의 행동에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시장 주도 가설'이다.

법 주도 가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강력한 소수주주 보호법제가 기업 가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반면 시장 주도 가설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경영자들이 궁극적으로 시장의 요구를 따라 행동하므로 최소한의 법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두 견해와 달리, 오늘날 다수의 학자들은 법과 시장의 상호보완적 역할을 강조한다. 이는 경영자가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법적 규제와 시장 메커니즘 간 균형이 전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와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 등을 포함한 1차 개정안에 이어, 며칠 전 2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핵심으로 한다. 이 개정들은 소액주주 권익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시장 신뢰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합목적적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개정 취지가 법 주도 가설과 시장 주도 가설 중 그 어느 쪽에도 근거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개정안은 법을 강화하면 경영자의 행동이 개선될 것이라는 법 주도 가설에 기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이사의 충실의무는 이사 자신의 이익을 회사 이익보다 우선하면 안 된다는 의미일 뿐, 소수주주보호와 무관하다. 게다가 의무 대상을 전체 주주로 확대하였지만, 극도로 이질적인 주식 거래자 집단의 이익을 골고루 대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정안이 무엇을 강화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러면 이 개정은 시장 주도 가설에 부합하는가? 그렇다고 보기 힘들다. 시장 주도 가설은 경영자의 행동 통제와 주주 이익 보호가 주식시장의 가격 조정, 인수·합병 시장 등 외부 시장 장치로 해결된다고 본다. 따라서 주총 규칙이나 이사회 구조에 대한 일률적인 규제보다는 기업이 각자 계약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본 규칙만 있으면 충분하다. 충실의무 확대는 남소 가능성을 높여 경영자의 위험 회피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기업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룰이므로, 오히려 이번 개정안은 시장의 통제 기능을 불신하는 듯하다.

더 큰 문제는 개정안의 부작용이 기업과 경제 전반에 중대한 부담으로 귀결될 수 있음에도, 이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으로 인해 해외 투기성 자본과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 차익을 노리고 경영권 분쟁에 개입할 유인이 커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분쟁 과정에서 기업은 경영권 방어 비용과 소송 비용, PR 비용 등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는 경제 내 거래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미 대기업 상당수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연간 수십억 원 규모의 법률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개정안 시행 후에는 그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 한국 경제는 저성장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5년 성장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감소, 생산성 둔화,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등 악화되는 경제 여건 속에서 기업의 투자 의지를 위축시키는 법제 변화는 그 자체로 중대한 부담이다. 상법 개정이 초래할 사회적 비용과 경영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 가치 극대화와 시장 신뢰 제고라는 개정 취지의 정당성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법만으로 경영자의 행동을 규율할 수 있다는 단순한 믿음이나, 특정 주주를 규제하면 나머지 주주는 시장에서 자동으로 보호된다는 순진한 이상만으로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따라서 법과 시장 간 균형을 고려한 정교한 제도가 필요하다. 충실의무 범위 명확화, 행동주의 남용 방지 장치, 남소 억제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이번 개정은 명분만 있고 실익은 없는 입법으로 끝날 위험이 크다. 상법 개정이 진정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법과 시장의 상호작용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후속 논의가 절실하다.

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호주 라트로브대학교 로스쿨, 시드니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수학하였으며,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법무법인 광장에서 변호사 수습과정을 마쳤으며, 호주 모나쉬대학교 재무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법과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한때 음악을 전공했던 것을 계기로 문화예술의 경제적 가치를 탐구하고자 한국문화경제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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