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과 방관, 교실에서 시작된 비극의 진실
유죄와 무죄를 넘어, 폭력의 뿌리를 직시하게 만드는 법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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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실적인 법정 드라마의 구성이다. 공연은 시작과 동시에 '사건 번호 2025고단001, 피해자 고준희 사망 사건'이라는 선언과 함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객석은 단숨에 법정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배우들의 대사는 실제 재판 녹취록을 방불케 할 만큼 구체적이고 정밀하다. 검사의 공소 요지, 변호인의 반론, 증인의 진술이 교차하면서 사건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명확한 결론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끊임없이 관객에게 의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피해자인 고준희는 생전에 학급 내에서 일진으로 군림하며 폭력을 일삼았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그는 친구들을 때리고, 모욕을 주고, 금품을 갈취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런 행태는 단순한 사춘기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으로 누적되며, 결국 주변인의 고통과 파국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피고인 강도윤은 자신의 딸이 학교폭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고준희와 대립각을 세운 아버지다. 그가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렀는가, 아니면 단순한 혐의자일 뿐인가가 재판의 핵심이다. 검찰은 CCTV 사각지대를 일부러 이용하며 70분간 행적을 감춘 피고인의 동선을 '계획적 범행'의 증거로 내세운다. 반면 변호인 측은 PTSD에 시달린 피고인이 단순히 기억을 잃었을 뿐이라며, 결정적 물증이 없는 이상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맞선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증인 신문은 이 연극의 백미다. 배달 일을 하던 청년, 피해자와 같은 반 친구, 정신과 의사, 법의학 교수까지 차례로 등장한다. 각 증언은 사건의 퍼즐을 조금씩 맞추어 주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모순을 만들어낸다. 목격자는 '서로 밀치는 장면을 보았다'고 진술하지만,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정신과 의사는 피고인의 불안정한 상태가 충동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하지만, 동시에 모든 PTSD 환자가 폭력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법의학 교수는 피해자의 머리에 다섯 차례 타격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도, 범행이 치밀한 계획인지 순간의 격앙된 충동인지 명확히 가르지 못한다.
이처럼 '재판'은 각 인물이 발언할 때마다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이 더욱 멀어지는 아이러니를 구축한다. 관객은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법정이라는 공간은 진실을 드러내는 무대가 아니라, 진실을 둘러싼 말과 논리의 전쟁터라는 것을. 그 속에서 증거는 자주 불충분하고, 진술은 모호하며, 판단은 결국 인간의 해석에 의존하게 된다. 연극은 이 과정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면서, 관객이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서도록 만든다.
무대 연출 역시 이러한 긴장감을 뒷받침한다. 단순한 재판정 세트가 아니라 실제 법정 구조를 모사한 무대는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객석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분열되도록 설계되었다. 검사가 증인을 몰아붙일 때는 객석 한쪽이 숨죽이고, 변호인이 반대신문을 통해 논리를 비집고 들어갈 때는 또 다른 쪽이 고개를 끄덕인다. TV 모니터를 통해 CCTV 장면이 제시되면서, 관객은 마치 실제 법정에서 증거 영상을 확인하듯 사건의 단서를 따라가게 된다. 덕분에 공연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현실감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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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피고인 강도윤의 최후 진술이다. 그는 법정에서 끝내 무죄를 선고받지만, 그 과정에서 흘러나온 고백은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전 죽이지 않았습니다. 진짜 죄인은 우리 딸을 죽게 만든 가해자들과 모른 척 외면했던 방관자들, 그리고 이 사회입니다."라는 대사는 단순히 극 속 대사가 아니라, 실제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피해자 가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연극은 그 절규를 있는 그대로 무대 위로 옮겨옴으로써, 학교폭력 문제의 사회적 공범으로서 우리 모두를 불편한 자리에 앉힌다.
판결 장면 또한 흥미롭다. 결국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지만, 그것이 곧 무대 위 갈등의 해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판결문은 검찰이 판결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 항소할 수 있음을 고지하며 재판을 마무리했다. 법정 밖으로 나온 후에도 검사와 변호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는 상처받게 된다"는 대사는 연극의 핵심 질문을 응축한 문장이다. 법과 정의, 진실과 복수, 피해와 가해의 경계는 언제나 흐릿하며, 그 속에서 누군가는 구제되지 못한 채 남겨진다.
연극 '재판'은 결국 관객에게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질문을 남긴다. "정의는 살아 있는가?", "법은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가?",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누구이며, 그 책임은 어디까지 나누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래 잔향처럼 맴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재판'은 단순한 법정극을 넘어선다. 그것은 사회극이자, 공동체 전체에 대한 고발장이며, 동시에 관객 스스로가 자기 안의 법정에 서도록 요구하는 거울이다.
이번 작품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학교폭력 사건들을 환기시키며, 제도적 한계와 인간적 고통 사이의 괴리를 낱낱이 드러낸다.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관객은 하나의 불편한 깨달음에 도달한다. 법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며, 진실은 법정에서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정의를 갈망한다. 연극 '재판'은 바로 그 모순된 열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 속에서 관객은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