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석화 넘어 뷰티 등 신동력 발굴
재무 개선 속 '현금창출원' 확보 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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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투자은행(IB)업계 등에 따르면 태광산업과 이호진 전 회장 중심의 사모펀드 티투프라이빗에쿼티, 유안타인베스트먼트가 꾸린 컨소시엄은 애경산업 경영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대상은 AK홀딩스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애경산업 지분 63% 수준이다.
애경산업은 시가총액 4300여 억원의 가치로,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고려하면 약 4000억원을 훌쩍 넘는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산업은 수개월 전부터 사업 다각화를 위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화장품 등의 신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히면서 인수 후 통합 계획까지 세웠던 바 있다.
태광은 1950년대 스판덱스 사업을 출발점으로 석유화학에 진출하며 재계 59위, 20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섬유·석화 부문의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신사업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번 인수로 태광은 기존 석화사업 노하우를 활용해 뷰티 사업으로 방향성을 넓힐 수 있게 됐다. 공급과잉으로 적자 폭이 커지는 제품 대신 스페셜티 소재를 중심으로 재편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기존 사업에서 화장품과 연계할 수 있는 부분을 활용해 산업을 육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지난해부터 사업 확장 등을 위해 검토해 온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화장품과 생활소비재 시장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됐다. 태광 입장에선 기존 B2B 중심 사업에서 B2C 영역으로 외연을 넓히는 의미가 크다. 일각에서는 홈쇼핑 사업 등과의 연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태광은 2000년대까지 공격적인 M&A로 외형을 확장했지만, 이호진 전 회장의 퇴진 이후 보수적 경영 기조를 이어왔다. 이번 인수는 사실상 17년 만의 대형 거래로, 그룹이 다시 적극적인 투자 모드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이 전 회장이 인수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한 만큼 향후 더욱 공격적인 외연 확장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 거래는 단순한 기업 매입을 넘어, 그룹이 선포했던 '신사업 중심 M&A' 전략이 현실화되는 첫 사례로 평가된다. 애경산업의 화장품 브랜드와 글로벌 유통망을 발판 삼아 뷰티·라이프스타일 산업에서 도약을 꾀할 수 있다.
애경산업 인수에 이어 태광은 추가 M&A 후보도 물색 중이다. 호텔·부동산 부문에서는 메리어트 남대문 인수를 추진 중이며, 금융 부문에서는 이지스자산운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태광이 단순히 화장품산업에 진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뷰티·부동산·자산운용 등 다각적인 신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그룹 전체 사업 구조를 소비재·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해 안정적인 현금창출원 확보에 나서는 셈이다.
태광은 최근 재무구조를 정비해 현금 동원을 위한 여력을 갖춘 상태다. 2025년 상반기 기준 태광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5040억원, 단기금융상품은 8182억원에 달한다. 그룹은 애경산업 인수를 포함해 총 1조5000억원가량을 신사업 투자에 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상반기 기준으로 영업손실 162억원으로 적자를 기록 중이지만, 안정적인 금융자산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