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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공기업 윤리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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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원 기자

승인 : 2025. 09. 17. 18:04

[포토]공공기관운영위원회 주재하는 구윤철 부총리
아시아투데이 박성일 기자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배석원 기자 증명사진
"아마 시작은 그랬을 거야. 이렇게 보상 받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겠지. 노골적으로 리턴을 요구하게 되고, 아마 그때 머리가 처음 열리고 세상이 보였겠지. 세상이 쉽고 자연스럽다고 믿어질 때쯤 다시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버린 거지."

2014년 방영된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오 차장의 대사다. 같은 부서의 한 직원이 언제부턴가 업무 범위를 벗어나 거래처로부터 리베이트(뒷돈)를 챙기고, 본인 직장 외에 다른 기업까지 겸직하는 등의 일탈을 거듭하다 결국 감사에 걸려 몰락하는 장면에서 오 차장이 던진 말이다.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알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사적 이익을 챙기다 결국 조직 신뢰를 해친다는 점에서 우리 주변의 모습도 이 드라마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겸직 위반 사례도 잊을 만하면 고개를 든다. 공기업 규정상 기업으로부터 금전을 받아 물품을 홍보하거나 영리 목적의 겸직은 원칙적으로는 금지돼 있다. 그럼에도 본업은 제쳐두고 '제2의 월급'을 만들려는 도전자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에너지 공기업 일부 직원이 겸직 위반으로 자체 감사에 적발됐다. 그는 회사를 다니며 개인 도시락 브랜드를 론칭하고 법인까지 세워 사업을 벌였다. 근무시간에는 수차례 SNS에 상품 홍보 글을 올렸고, 육아휴직 기간에는 사업차 해외 출장을 여러 차례 다녀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후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공문서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겸직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만 약 1억원에 가깝다.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 속에서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 적발된 같은 공기업의 또 다른 지사 직원은 회사 사택을 '도마뱀 하우스'로 바꿔 버렸다. 방 두 칸에 부화 장비까지 들여놓고 도마뱀 331마리를 기르며 파충류 사육장으로 개조한 것이다. 이렇게 키운 도마뱀들을 SNS로 판매해 1400만원을 번 사실도 조사에서 확인됐다. 사업장 명의는 배우자로, 사업 주소지는 사택으로 지정했다. 공공의 시간과 공간이 사적 이익에 잠식된 풍경이다.

특정 공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겸직 금지 공기업 직원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어떤 내용이었을까. 글쓴이는 "부동산 1인 법인을 세우려 한다"면서 처음에는 배우자를 대표로 두고 자신은 감사를 맡아 월급만 받지 않으면 겸직 조항에 걸리지 않는지 묻는 글이다. 댓글에는 어떤 방식이 가장 안전한지 추천해 주고 있었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고착화되고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차명 계좌를 만들고 가족이나 타인의 이름을 빌려 편법을 이어가는 것일 것이다. 그들의 '열정'까지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공기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들의 공적 책임감은 일반 직장인과는 달라야 한다. 일부 직원들의 울타리 밖의 일탈로 공기업의 신뢰를 깎아내려선 안 될 것이다.
배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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