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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부족했던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고 수요가 집중되는 도심권 내에 양질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현재까지 확보한 택지 규모를 감안하면 연 27만 가구, 향후 5년 동안 총 135만 가구의 주택공급은 충분히 가능하다. 도심권 주택에 유효수요가 많은 점을 고려해 유휴시설과 노후시설을 주거시설로 전환하고, 정비사업 활성화를 통한 도심지 주택공급을 적극화한다는 점 역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9·7 주택공급계획이 이전 정부의 공수표와 달리 현실화 내지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서너 가지의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직접 시행을 맡게 되는 LH의 자금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LH는 신도시나 택지개발을 통해 택지를 선매각하고 이 자금으로 기반 시설과 공공임대 주택건설 및 운영관리를 해오는 구조다. 평당 수십만 원 보상에 수백만 원 매각이라는 행태를 보면 LH=땅장사라는 말이 틀린 게 아니나 이는 겉만 보고 하는 얘기다. 기반시설로 인한 감보율에 임대주택건설과 운영에 들어가는 자금 적자, 정부마다 앞잡이처럼 대행시키는 매입임대 등 정책사업 등으로 골병든 게 LH다.
2024년 말 LH 부채 규모는 무려 160조 원대에 이르러 이미 한계 상황을 벗어난 상태다. 분양은 물론 임대주택까지도 시세보다 싸게 팔고 세놓아야 하는 숙명적(?) 한계로 여기서 생기는 적자는 바로 부채로 더해질 것이다. 앞으로 택지의 민간 매각 없이 공공주택지에 분양이든 임대든 직접 시행하게 된다면 이러한 적자 폭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서민의 주거 유형은 다가구, 다세대 등 소위 빌라와 비아파트가 주를 이루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택지 LH 공공 아파트 직접 사업은 서민과의 거리감이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현재의 주택공급 부족이 어디에 기인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시장침체와 규제에 의한 것일 수 있으나 주범은 역시 건설 원가 상승이다. 원가가 30% 이상 급상승하면서 시장은 역으로 침체하다 보니 민간 주택건설업체 부도가 줄을 잇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깨지고 보증을 섰던 업체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자재 상승에서 인건비 급등, 거기다가 안전사고 등 시공 리스크가 더욱 커지는 현실을 참작하면 공급의 메커니즘 회복은 더더욱 쉽지 않을 처지다.
그런데도 이번 9·7 대책에 주택건설업체들의 경영난 타개책이나 공급 메커니즘 회복을 위한 대안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허가 규제 완화 정도로 과연 이를 타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주택건설업체의 몰락으로 실제 집을 지어야 하는 형편임에도 제대로 건설하지 못해 지난 10년 동안 몸살을 앓아온 바 있다. 게다가 공공택지에서의 민간사업이 불가능해진다면 민간이 개인 땅을 개발해 주택사업을 하는데 이는 매입에서부터 용도변경, 인허가까지의 사업기간이 길어져 민간주택 공급의 절벽을 맞을 수도 있다. 이는 되레 중산층이 입주하는 민간 아파트의 부족난을 가속화, 더욱 집값을 올릴 개연성도 없지 않는 등의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래 비전을 담을 준비 부족을 들 수 있다. 무조건적, 양적 주택공급이 아니라 향후 인구감소와 가구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공급계획을 수립하되 여기에 걸맞은 실행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인구 감소상황에서도 가구 수 증가가 2041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 주택수요 확대는 향후 10여 년이 정도가 한계다. 또 1~2인 가구를 중심으로 가구 수가 증가하면 이들을 위한 주택수요 증가와 함께 코-리빙(co-living), 코-하우징(co-housing)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주택 수요가 확대될 게 분명하다.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지가가 높은 도심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인구가 증가한다면 일과 주거, 여가가 복합화된 유형의 주택수요 확대될 것이다. 1인당 주거면적 역시 일본보다 적고 고령가구와 여성 가구가 증가하는 현실 등을 수용하는 공급계획수립이 절실하다. 수요에 대응한 다양한 유형의 주택공급이 이뤄지고 중장기 수요변화에 대응한 질적 변화에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구와 소득의 양극화는 주택수요 변화에 중요한 요인임을 직시하고 이에 걸맞은 주거 유형과 서비스, 그리고 합당한 주거비를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장용동 한국주거복지포럼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