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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MB정부 때 공정거래위원장과 국세청장,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백용호 전 이화여대 교수가 그의 국정 경험과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 '백용호의 반전'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전 대통령과 점심식사를 할 때 나는 밥을 자주 남겼다. 그러면 이 전 대통령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 먹었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면 이 전 대통령은 남은 밥그릇을 가져가 싹싹 비우곤 했다. 김칫국물이 묻어있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고 남은 밥을 다 먹었다." 이어 백 전 교수는 "훗날 그가 서울시장과 대통령이 되어 전통시장을 방문해 누구와도 격의 없이 식사를 할 때면 일각에서 '정치 쇼'라고 비난했지만, 나는 그의 진심을 믿었다"고 술회했다.
그럼 MB는 몸 안에 음식을 채울 수 있는 위의 사이즈가 남보다 훨씬 커서 식탐을 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필경 배를 굶주리며 식사를 건너뛰던 어려웠던 때를 잊지 않은 채 멀쩡한 음식이 버려지거나 낭비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필자의 경우도 웬만해선 밥을 남기지 않는다. 또 식사를 마친 후 물만 따라서 마신 멀쩡한 종이컵은 사무실로 갖고 와 커피를 타 먹거나 손만 닦은 화장지로 먼지를 없애거나 책상을 닦는 용도로 재활용하기도 한다.
매사에 씀씀이에 인색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낭비하는 모습은 싫고 아마도 이런 태도는 평소 생활습관으로 체질화된 것 같기다. 성년이 된 두 아들에게도 식사할 때만큼은 가급적 밥그릇에 밥알이 남지 않도록 아이 때부터 교육을 시켰다.
그러면 식당에서 자주 쓰는 종이컵의 경제적 비용을 따져볼까? 환경부에 따르면 종이컵 1톤(약 12만5000개)을 생산할 경우 20년생 나무 20그루를 베야 하고, 그에 따른 투입 비용이나 쓰레기처리 비용도 상당하다. 1년치 종이컵을 만들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만 13만2000톤인데, 나무 4725만 그루를 심어야 이를 흡수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가 궁핍했던 시절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먹고살 만해지니까 절약정신이 희미해지고 씀씀이가 넘쳐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품 폐기량은 연간 약 550만톤, 처리비용은 약 1조1000억원에 달한다. 분리 배출되는 음식물류 폐기물과 제조과정 폐기물, 종량제 봉투에 버려지는 것까지 합치면 식품 폐기물은 하루에만 약 2만2000톤, 즉 음식 쓰레기의 4분의 1은 먹기도 전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세계적으로도 골칫거리여서 세계자연기금(WWF)은 지난 2022년 지구촌에서 해마다 먹지 않고 남겨서 버려지는 식량이 대략 40%(25억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에너지와 식량, 물질, 세계화 등의 주제에 정통한 캐나다 사상가 바츨라프 스밀은 그의 저서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통해 세계 식량 생산량은 하루에 1인당 3000kcal인데 음식물 쓰레기는 1인당 1000kcal라면서 낭비에 무감각한 지구촌 세태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내친김에 일상생활 속 아이들의 학용품 씀씀이 문화도 거론하고 싶다. 요즘 어느 집을 가든 학생 책상엔 필기도구가 넘쳐난다. 다 쓰지도 않은 연필이나 펜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거나 여기저기 뒹굴기도 한다. 이면지를 수학문제를 풀거나 영단어 암기 연습장으로 재활용하면 좋으련만 새 노트만을 고집하기도 한다. 책가방도 가급적 새것이어야만 하고 비싼 신발도 아까운 줄 몰라 구겨 신는 학생이 적지 않다. 스마트폰은 물론 개인용PC도 몇 년만 지나면 반드시 교체해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얼리어답터 모습마저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귀퉁이에 녹슨 자전거가 방치된 풍경이나 이사 갈 때 한쪽 공간에 남겨놓은 멀쩡한 가구나 일상용품을 보면 정말 우리가 이래도 되는지, 자칫 국가적으로 경제적 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그런 배짱이나 맷집이 발휘될 수 있을지 모골이 송연할 때도 있다. 일반 회사에서도 컴퓨터를 끄지 않은 채 퇴근하거나 불필요한 곳에 전기를 켜놓고 이면지를 함부로 버리는 일도 부지기수.
흔히 부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여러 가지 들 수 있겠지만 갑부들은 그 첩경으로 절약정신을 내세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헌 구두 몇 켤레와 오래된 구식 텔레비전을 소중히 여겼고, 세계 1위 면세점 DFS의 창업자인 척 피니는 1만원짜리 시계와 가장 싼 이코노미석 비행기 좌석을 애용했다. 그러면서도 통 큰 기부를 실천해 한때 8조원이 넘던 재산이 21억원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여러 방면에서 풍족해지면서 어느새 물자가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하는 세태가 널리 퍼졌다. 지금이라도 쓸 때와 아낄 때를 구분하는 지혜를 연마해 보면 어떨까?
김종철 디지털미디어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