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추석 연휴, ACC가 전하는 안방 극장…인형극과 연극으로 만나는 문화의 향연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929010015811

글자크기

닫기

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9. 29. 15:18

‘아롤을 깨물었을 때’·‘사사로운 사서’, 가족과 함께 즐기는 온라인 상영작
명절의 의미 확장하는 ACC의 디지털 무대 실험
01
연극 '사사로운 사서'의 도서관 무대 장면. /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추석은 오랫동안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세대를 잇는 자리였다. 그러나 최근의 명절 풍경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긴 연휴에도 멀리 이동하기 어려운 사람들, 세대 차이로 함께 여가를 즐기기 어려운 가족들에게 문화예술은 새로운 연결의 통로가 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이러한 흐름을 읽고 올해 추석에도 온라인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오는 10월 3일부터 9일까지 ACC 유튜브 채널을 통해 '추석은 ACC와 함께'라는 이름으로 공연 영상을 선보인다.

ACC는 지난 2020년부터 명절 기간마다 우수 공연을 온라인으로 공개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공연예술계가 새로운 무대를 모색하던 시기에 ACC는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현장에서만 볼 수 있던 무대를 집에서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면서 공공기관의 역할을 확장했고, '명절에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는 기획 의도는 추석이라는 맥락과 맞아떨어졌다.

올해 상영작은 어린이 인형극 '아롤을 깨물었을 때'와 연극 '사사로운 사서' 두 편이다. 서로 다른 장르이지만 두 작품은 모두 회복과 성장이라는 주제를 품고 있으며, 문화적 배경과 표현 방식에서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아롤을 깨물었을 때'는 ACC가 춘천인형극제, 몽골 국립인형극장과 손잡고 만든 공동 창·제작극으로 ACC가 발간한 그림책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몽골의 전통 우유과자인 아롤을 깨무는 순간 13세기 몽골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작되는데, 고려 말을 할 줄 알아 지우를 보살피게 된 시녀 샤르와 고려 왕자 지우, 그리고 실존 인물인 쿠툴룬 공주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대사 없이 인형의 움직임과 음악, 무대 장치를 통해 서사가 전개되며, 한국과 몽골의 설화를 결합한 각색은 두 문화권의 전통적 상상력을 무대 위에서 공존하게 만든다.

지난 5월 ACC에서 초연된 뒤 춘천세계인형극제와 몽골 '세계유목문화축제'에서도 선보이며, 제작·유통의 확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지만 단순한 오락극에 머물지 않고, 타지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왕자의 고독과 문화적 경계 속 모험을 다루며 다문화 사회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각자의 시선으로 다른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추석 연휴 상영작으로 적합하다.

02
인형극 '아롤을 깨물었을 때'의 무대 장면. /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03
인형극 '아롤을 깨물었을 때'의 무대 장면. /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연극 '사사로운 사서'는 보다 사색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난해 낭독회 형태의 시범공연을 거쳐 관객과 전문가의 호평을 받은 후 올해 본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작품으로, 공공도서관 보존서고를 배경으로 침수 사태라는 위기를 겪으며 장서와 사람,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가치가 흔들리고 회복되는 과정을 그린다.

과거 학교 건물이었던 공공도서관, 책장이 빼곡한 자료실, 그곳에서 일하는 사서와 사회복무요원의 일상적인 풍경은 관객에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전혀 다른 드라마가 펼쳐진다. 집중호우로 보존서고가 침수되자 사서들은 젖은 책을 구해내기 위해 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삶과 기억 또한 수면 위로 드러난다.

도서관 장서가 복원되는 과정은 곧 서로 다른 가치관이 공존하는 사회의 회복을 상징하며, 관객에게 공감과 사유의 지점을 동시에 제공한다. 올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활약한 배우 이지현과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의 손지윤이 주요 인물을 맡아 무대의 설득력을 더했다. 실제 학교 도서관을 구현한 무대 장치는 몰입도를 높이고, 물에 젖은 책을 복원하는 장면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비춘다.

04
연극 '사사로운 사서'의 도서관 무대 장면. /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05
연극 '사사로운 사서'의 도서관 무대 장면. /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가 이 같은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가는 이유는 광주라는 지역 거점에 뿌리를 둔 국립기관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다. 서울 중심으로 집중된 문화예술의 구조 속에서,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을 전국민과 나아가 해외 관객에게까지 확산시키는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상욱 전당장은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ACC의 우수 공연을 가족과 함께 집에서 감상하며 풍성한 한가위를 보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히 영상을 틀어주는 행사가 아니라, ACC가 문화의 공공성을 확장하는 시도다.

팬데믹 이후 온라인 공연은 공연예술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잡았다.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등 주요 기관들도 비슷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으나, ACC의 프로그램은 지역성과 국제성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특히 몽골과 협업한 인형극처럼 다국적 공동제작 작품을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사례는 드물다. 동시에 온라인 상영은 현장의 몰입감을 완벽히 대체하기 어렵고, 저작권이나 유통 구조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그럼에도 ACC의 꾸준한 시도는 공연예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험하고 새로운 모델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의미를 가진다.

결국 '추석은 ACC와 함께'는 명절 풍경을 바꾸는 실험이다.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던 시간에 이제는 국립문화기관이 제공하는 공연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안방이 곧 극장이 되는 순간, 문화예술은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아롤을 깨물었을 때'가 전하는 성장과 모험, '사사로운 사서'가 묻는 회복과 공존은 추석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개인과 공동체, 과거와 현재, 한국과 몽골을 잇는 이 공연들은 온라인이라는 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는다. 공연장은 멀리 있지만 문화는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 ACC의 기획은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전형찬 선임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