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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에서 이 단어는 오랫동안 불신의 대명사였다. 2000년대 상조업계는 불완전 판매, 계 모임을 빙자한 사기, 선수금 '먹튀' 사건으로 얼룩졌다. 피해자들의 절망 섞인 목소리는 사회면 단골 기사였고, 소비자에게 상조는 곧 사기였다. 여기에 '죽음을 준비하는 상품'이라는 무거운 이미지까지 겹쳐 상조는 외면받았다. 무분별한 업체들의 난립 역시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켰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전통 강자인 보람상조를 필두로 웅진프리드라이프(구 현대종합상조), 교원라이프 등 대형 브랜드가 고객 혜택 강화를 앞세우며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공정위를 통한 선수금 예치, 내 상조그대로 제도 등 안전장치가 마련되면서 최소한의 신뢰 기반도 갖췄다. 과거 '죽음을 준비하는 불길한 상품'에서, '삶의 마지막을 정리해 주는 서비스'로 재정의된 것이다.
서비스 영역도 변모했다. 장례에 국한됐던 상조는 '토털 라이프케어'로 확장해 웨딩·여행·교육·레저 등 생활 밀착형 서비스까지 포괄한다. 소비자 접점을 넓히면서 상조는 '죽음'의 무거움을 넘어 '삶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장례식장 고급화, 편의 서비스 강화도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해외 사례는 한국 상조업계의 미래를 보여준다. 일본은 상조를 요양·간병 서비스와 결합해 노후 전반을 관리하는 고부가 플랫폼으로 발전시켰다. 미국은 장례보험과 메모리얼 서비스를 제도권 안에 안착시켰다. 개인이 아닌 사회가 죽음을 함께 준비하는 구조다. 한국 역시 참고할 만하다.
시장의 성장세는 이를 방증한다. 상조 가입자는 1000만 명에 육박하며, 시장 규모는 10조원 수준이다. 대가족 중심 사회에서 핵가족·1인 가구 사회로 바뀌면서, 상조는 황망한 일을 당했을 때 가족 대신 정성으로 이별을 도와주는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다. '하면 손해'라던 상품이 이제는 '있어야 안심'되는 상품이 된 것이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일부 업체의 과장 영업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고령화·저출산 구조 변화에 맞는 상품 혁신도 더디다. 모바일 시대에도 전단지 영업에 의존하는 낡은 방식은 소비자와 괴리를 만든다. 불신의 그림자가 완전히 걷히지 않은 이유다.
앞으로는 정부·기업·소비자가 모두 달라져야 한다. 기업은 인식 개선 활동을 통해 신뢰 자산을 쌓아야 하고, 정부는 합리적 제도를 설계해 상생 구조를 뒷받침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상품의 성격과 활용법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 주체가 삼박자를 맞출 때, 상조는 규제와 불신의 틀에서 벗어나 '필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상조는 결국 '이별을 준비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기도 하다. 누구나 언젠가 마주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조는 삶의 품격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장치다. 불신의 산업에서 필수의 산업으로. 이제 상조가 진정한 '상조(相助)'의 이름을 되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