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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클보드는 목재를 잘게 부순 칩이나 톱밥 등을 접착제로 압착해 만든 대표적인 자원 선순환 제품입니다. 원목 대비 가격이 저렴하고 가공성이 좋아 건축과 가구, 인테리어 자재로 널리 쓰입니다. 책상, 붙박이장, 마룻바닥 같은 생활 공간의 기초 자재로 활용도가 높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업을 지탱하는 자재'로 불립니다. 다만 내수성과 강도가 낮아 습기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어 품질 고급화 노력이 병행돼야 합니다.
국내 파티클보드 산업은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며 공급 기반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수출 비중은 미미한 편으로, 내수 시장 붕괴는 곧바로 산업 자체의 위축으로 이어집니다. 파티클보드는 가구·건축 등 후방 산업 전반의 필수 원재료이기 때문에, 국내 생산 기반이 약화되면 가구업체나 건설사들이 안정적인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는 원가 부담으로 연결돼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내 업계의 피해는 수치로 드러납니다.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태국산 수입량은 연평균 10.7% 늘었지만, 국내 제품 판매는 11% 줄었습니다. 이 기간 태국산 점유율은 21%포인트 늘었고, 국내산은 17.5%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생산설비 가동률은 평균 33%포인트 낮아졌으며, 결국 2023년에는 일부 라인이 멈췄습니다.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국내 시장 질서가 크게 흔들린 셈입니다.
이번 관세 부과는 공정 경쟁 환경을 되찾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파티클보드는 건축과 가구 등 기초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자재입니다. 공급 기반이 무너지면 후방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업계가 이번 조치를 환영하는 이유는 단순히 가격 경쟁에서 한숨 돌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지킬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이 더 큽니다.
그러나 반덤핑 관세가 곧바로 산업 정상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관세라는 보호막은 일시적인 수단일 뿐, 산업 체질을 바꾸는 해법은 아닙니다. 태국산 공백을 노린 중국산 저가 물량이 유입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국내 합판·보드 시장은 특정 국가의 가격 전략에 취약한 구조를 오랫동안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입선 다변화, 원자재 가격 안정, 고부가 제품 전환 같은 과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외부 변수도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한-태국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협상 품목에 파티클보드가 포함된 사실입니다. 협정이 발효돼 해당 품목이 양허 대상이 된다면, 어렵게 쌓은 관세 장벽은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보호막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는 마냥 안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관세가 주는 시간을 활용해 내실을 다지는 일입니다. 생산설비 현대화, 품질 고급화, ESG 기준 강화 등 구조적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보호막이 걷히는 순간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정 경쟁 환경이 마련된 지금이야말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반덤핑 관세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체력, 단기 가격 공세에도 버틸 수 있는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보호막이 쳐졌을 때 업계가 뼈를 깎는 변화를 선택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이번 조치가 단순한 '시간 벌기'로 끝날지, 산업 도약의 발판이 될지는 업계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