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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트럼프판 애치슨 라인’ 등장 우려와 한국의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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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0. 0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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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1950년 1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미국 방위선(일명 '애치슨 라인')을 발표하면서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두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북한은 이를 미국의 개입 의지 약화로 해석했고, 6·25전쟁이 곧바로 발발했다. 한반도는 냉전의 첫 격전장이 되었고, 수십만 명의 희생을 치른 끝에 겨우 휴전에 이르렀다. 그때 미국은 한국을 공산주의 침략확대 저지를 위한 전략적 완충지대로만 보았고, 본토방위와 세계적 영향력 확장을 위해 한반도의 고통을 방치한 셈이었다. 이는 해방 후 미군철수 방지와 한국군 무장 강화를 주장했던 웨드마이어 장군의 보고서에서도 명확하게 입증된다.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 다른 '트럼프판 애치슨 라인'의 등장을 우려해야 할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발표할 예정인 새 국방전략(NDS)은 "미국 본토방위 우선"을 기조로 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유력 외신에 따르면, 중국 포위 전략을 위해 그럴 리가 없겠지만 한국과 대만을 기존 아시아 방위선에서 제외하고 일본만 포함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가 오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문서상의 변화가 아니라 동북아 전체 안보 지형을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는 대전환이다.

◇미국의 전략적 기억상실증

미국은 스스로를 오랫동안 패권국으로서 "세계의 경찰(Global Police)"이라 자처해 왔다. 하지만 그 명분 뒤에는 늘 자국 이익 우선의 냉정한 계산이 있었다. 6·25전쟁은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됐지만, 실상은 미국이 냉전 초기 재래식 군비 증강과 세계 전략 재편을 위해 이용한 전쟁이었다. 미국은 한국이 피를 흘리는 동안 자국의 군사·산업 역량을 급속히 확대했으나, 그만큼 미국 국민들은 2차 세계대전에 지쳤고 이런 여론은 급격한 동원해제와 감군으로 연결되는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소련과 중공이 대군(大軍)을 유지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미군은 군비를 증강할 방안을 고민했고 미 영토가 침략을 당하지 않는 한 전쟁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중립법(Neutrality Act)이 가로 막았다. 그래서 내건 명분이 공산주의 확산 방지였다. 이 사실은 한국의 핵무장 반대원칙에도 적용되며 한반도의 핵 균형을 의도적으로 통제해 왔다. 북한의 핵무장은 사실상 방임하면서 한국의 핵무장은 끝까지 억제한 것이 그 증거다. 이 점은 문서로 입증이 된다. 미국은 한반도의 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들의 패권 관리와 핵확산 방지 전략을 수행해 온 것이다. 이스라엘의 핵은 용인하는 선별전략을 택했다.

트럼프가 본토 우선주의를 앞세운다면, 한국은 그동안 믿어온 미국의 방위공약이 허공으로 사라질 가능성을 직시해야 한다. 동맹의 무게 중심은 이미 비용분담과 방위비 협상으로 기울어져 있다. 트럼프는 과거 "한국은 부유한 나라인데 왜 우리가 그들을 지켜야 하느냐"고 공언했다. 만약 그가 새로운 방위선을 일본까지로 한정한다면, 이는 1950년 애치슨 라인의 악몽을 재현하는 것이자 미국 스스로 동북아 안보체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한국이 짊어진 '안보 무임승차' 프레임의 허구

트럼프와 일각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안보 그늘아래 '무임승차'해 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프레임은 절반만 진실이다.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전쟁과 긴장의 전초기지였다.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사실상 방임하며 한국의 핵 자주 노력을 막아왔고, 동시에 방위비 분담과 첨단무기 도입을 통해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 세계 경찰을 자임하던 미국은 막대한 군비지출로 부채가 늘자 이제 본토 방위로 후퇴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동맹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마저 외면하고 비용만 전가하겠다는 비겁한 태도다.

◇한국의 생존을 위한 핵자강(核自强)

만약 미국이 '트럼프 라인'을 현실화하여 한반도를 방위선 밖으로 밀어낸다면, 한국은 생존을 위해 독자적 억제력 확보를 고민해야 한다. 북한은 이미 수십 기의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전략 환경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흔들고 있다. 미국이 본토 방위에만 집중한다면 한국의 핵무장 금지 정책은 더 이상 정당성을 잃는다. 동맹의 안보를 거둬들이면서 동시에 한국의 핵 옵션을 묶어두는 것은 한국을 위험에 내모는 행위다.

한국은 최소한 두 가지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독자적 핵무장을 적극 검토해 실질적 방어력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미국이 진정한 동맹으로 남으려면 인도태평양에서의 균형 유지를 위한 책무를 져야 한다는 점을 요구해야 한다. 한국은 단순 '안보 수혜자'가 아니라, 미국 전략의 최전선에서 비용을 치른 파트너였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보내는 요청

트럼프가 새로운 애치슨 라인을 그려낸다면 그것은 미국의 전략적 후퇴일 뿐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 안보를 불안정으로 몰아넣는 위험한 도박이다. 세계 경찰 역할을 포기하고 본토 방위만을 고집하는 미국은 동맹을 배반한 '비겁한 보안관'으로 기억될 것이다. 미국이 자국의 피로감을 이유로 동맹의 손발을 묶고 물러선다면, 한국은 자력 생존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을 막을 도덕적·정치적 권리는 더 이상 미국에 없다. 동맹은 일방적 의존이 아니라 상호책임 위에 서야 한다.

미국이 진정한 세계 리더로 남고자 한다면 본토 방위주의로의 퇴행을 멈추고,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공백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은 생존을 위한 핵 자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해방 후 유행했던 말이 사실이 될까 우려가 된다. "소련에게 속지 말고 미국 믿지 말고 일본은 일어선다. 조선사람 조심해라." 우리는 이 말이 사실로 판명되지 않는 언어유희이기를 바란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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