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불러온 위로와 불안, 애도의 본질을 향한 질문
기술이 아닌 감정, 시스템이 아닌 인간을 바라보게 하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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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그리프봇(griefbot)'은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의 이름이다. 그리프봇은 개인의 데이터와 목소리, 영상 기록을 기반으로 사망한 사람이나 반려동물을 되살려내어, 마치 살아 있는 듯 대화와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해외에서는 '디지털 레저렉션(digital resurrect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기술 발전의 윤리적 한계를 시험하는 사례로 주목받아왔다.
한국 사회에 이 기술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20년 방송된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였다. 세상을 떠난 어린 딸과 어머니가 4D 가상현실 속에서 재회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한편에서는 "짧지만 절절한 만남이 남겨진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공감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다른 한편에서는 "죽음을 소비하는 방식이 과연 윤리적인가"라는 비판이 있었다. 기술이 제공한 감동은 곧바로 기술이 던진 질문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죽음과 기억, 기술과 윤리라는 무거운 주제가 대중의 거실 안방까지 밀고 들어왔고, 한국 사회는 처음으로 애도와 기술의 관계에 대해 집단적으로 사유하게 되었다.
창작집단 꼴은 바로 이 지점을 연극의 언어로 끌어와 무대 위에 올린다. 그리프봇을 소재로 삼은 이번 작품은 다큐멘터리의 현장을 재현하거나 기술 자체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객이 기술이 만들어낸 만남을 직접 목격했을 때 느끼는 불안과 설렘, 위로와 의심의 양가적 감정을 연극적 상상력으로 구현한다. 현실에서 여러 차례 공감과 문제 제기가 교차해온 주제를 예술이 다시 붙잡는 순간, 질문은 단순히 "가능한가"에서 "우리는 왜 그 만남을 원했는가"라는 차원으로 옮겨간다. 연극은 기술적 실험의 현장을 넘어, 인간 감정의 가장 깊은 층위에 닿는 철학적 무대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리프봇'은 두 개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됐다. 황수아 작가의 PART 1은 죽은 소설가의 홀로그램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송인의 이야기를 무대로 펼칠 예정이다. 생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은 관객에게 사실과 허구, 기억과 데이터의 경계를 질문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어 조은주 작가가 쓴 PART 2는 반려견을 잃은 직장인이 AI 기술을 통해 다시 반려견과 마주하는 설정을 담는다. 반가움과 위로가 교차하는 그 만남은 곧바로 '이것이 진정한 치유일까'라는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결을 지니면서도, 결과적으로 상실과 애도라는 공통된 물음을 향해 나아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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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꼴은 2014년에 창단된 젊은 연극인들의 모임으로, 최근에는 SF와 연극의 접목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을 무대화하는 것은 이들의 꾸준한 실험 가운데 하나다. '그리프봇'은 그 연장선에서 기획된 작품으로, 단순히 기술적 호기심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본연의 감정과 윤리적 질문을 중심에 놓는다. 이는 동시대 젊은 연극인들이 연극을 통해 사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연에는 백은경, 유재연, 이태희, 한상훈이 나선다. 네 배우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AI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무대 위에 펼쳐낼 예정이다. 무대는 유주영, 조명은 손민영·임민영, 음악은 김용우가 맡아 작품이 다루는 기술과 감정을 무대 위에서 구현할 계획이다.
'그리프봇'은 단지 미래 사회의 기술을 예견하는 무대가 아니다. 오히려 애도가 반복될 수 있는지, 기억이 복제될 수 있는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 존재 자체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위로인지, 조작인지 모호한 체험 속에서 관객은 연극이 줄 수 있는 독특한 감정의 흔들림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은 기술이 아닌 감정, 데이터가 아닌 기억, 시스템이 아닌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무대다.
상실을 품은 자리에 다시 불러낸 얼굴이 과연 치유가 될 수 있을까. 연극 '그리프봇'은 관객에게 그 불편하고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기억을 복제할 수 있을까, 아니면 기억은 언제나 단 한 번의 경험으로만 남아야 할까. 이 질문이야말로 '그리프봇'이 던지는 가장 본질적인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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