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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월도’, 고립된 섬에서 피어오르는 인간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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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10. 13. 07:00

억압과 권력 속에서도 자유를 꿈꾸는 이들의 서사, 제10회 여성연극제 개막작으로 다시 무대에
이상희 연출과 극단 초인이 빚어낸 새로운 무대언어, 라디오와 오브제로 드러내는 인간의 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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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세 희곡열전' 참가작 '낙월도×맨발'의 공연 장면. / 사진 극단 초인
제10회 '여성연극제'의 막이 오르며, 올해 개막작으로 극단 초인의 '낙월도'(천승세 작, 이상희 연출)가 무대에 오른다. 이번 작품은 지난 5월 '천승세 희곡열전'에서 '낙월도×맨발'로 공연되어 작품상, 연출상, 인기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여성연극제의 개막작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는 '낙월도'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연극창작센터 서울씨어터 202에서 공연된다.

'낙월도'는 천승세 작가의 원작을 기반으로, 억압과 권력, 그리고 인간의 의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 향토적인 문체로 알려진 천 작가의 서사 위에 이상희 연출의 감각적인 무대미학이 더해졌다. 이번 공연은 억압 속에서도 삶과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중심에 두며, "돈과 정보를 장악한 권력, 즉 독재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파괴할 때 개인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상희 연출은 '낙월도×맨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소년 소녀 모험백서', '얼음꽃' 등을 통해 사회 구조 속에서 소외된 인물들의 서사를 꾸준히 다뤄왔다. 이번에도 그는 비정한 사회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탐색하는 서사를 이어간다. 연출은 개막작에 맞춰 이전 무대보다 한층 깊이를 더한 버전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작품의 배경은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섬, '낙월도'다. 권력자와 노동자, 그리고 제힘으로는 살아갈 방도가 없는 여성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공간은 사회의 축소판처럼 그려진다. 배와 정보, 그리고 라디오가 권력의 상징으로 등장하며, 이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대립이 중심을 이룬다. 섬을 빠져나가지 못한 인물들은 "가다가 물귀신이 되더라도…"라며 절망 속에서도 탈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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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세 희곡열전' 참가작 '낙월도×맨발'의 공연 장면. / 사진 극단 초인
이번 공연의 연출적 특징은 무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오브제로 구성한 점이다. 이상희 연출은 배우의 움직임과 오브제의 활용을 통해 신체언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무대미학을 시도했다. 벤치 형태의 대도구는 배, 대청마루, 심리 공간 등으로 변주되며,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매개로 활용된다. 장면의 정서에 따라 오브제의 형태와 배치가 달라지며, 시각적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이와 함께 인물의 '오브제화'도 주요한 연출 요소로 작용한다. 극 중 '묵자'로 불리는 두 명의 배우가 등장해 장면 사이를 잇는다. 이들은 대도구를 운용하며 극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비극적인 서사를 보다 유연한 톤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원작에 등장하는 무당 '청백이'의 존재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무대에서는 초자연적 힐링 메이커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숭고함을 환기한다. 연출은 이를 통해 원작이 지닌 인간애의 정신을 무대 위에서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라디오는 이번 공연의 핵심 오브제 중 하나다. 낙월도의 절대 권력자인 최부자와 양서방만이 라디오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외부 세계와 소통한다. 연출은 라디오를 정보의 독점과 시대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해, 섬 안팎의 변화를 대비시키는 방식을 예고했다.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외부의 소식은 억압된 공간의 정서를 흔드는 매개로 작용하며,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구체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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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세 희곡열전' 참가작 '낙월도×맨발'의 공연 장면. / 사진 극단 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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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세 희곡열전' 참가작 '낙월도×맨발'의 공연 장면. / 사진 극단 초인
이번 작품을 제작한 극단 초인은 2003년 창단 이후 꾸준히 '연극만의 언어'를 탐구해온 단체다. 영화나 TV드라마와는 다른 무대 고유의 상상력과 표현 방식을 찾는 데 집중해 왔으며, 배우의 움직임과 영상,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무대언어를 구축해 왔다. 초인의 배우들은 분장과 소품, 무대장치 제작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며, 기술 스태프와 함께 끊임없이 수정과 실험을 반복한다. 단순히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작품의 공동 창작자로서 존재하는 예술적 태도가 극단 초인의 중심 철학이다. 이러한 지향점은 이번 '낙월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공연은 이상희 연출을 중심으로 무대 이동인, 조명감독 김수원, 작곡·연주 이빛나, 바이올린 최예은, 조연출 한다희, 포스터디자인 유수진, 홍보마케팅 이정민, 음향 강태우가 참여했다. 출연진은 박현숙, 황성인, 김민정, 김진권, 손자영, 이세훈, 김은채, 이인석, 박무영, 유수진, 고동업, 임형택, 변민지, 김성연 등 14명이다.

극단 초인이 제작을 맡았으며, 서울특별시와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한다. 이상희 연출은 "배우의 움직임과 무대의 호흡이 함께 어우러질 때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 만들어진다"며 "그 과정에서 관객이 각자의 '낙월도'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연극 '낙월도'는 제10회 여성연극제의 개막작으로, 억압 속에서도 인간의 의지를 잃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서사를 중심에 둔다. 이번 공연은 여성연극제가 꾸준히 이어온 '도약과 연대'의 정신과 맞닿아 있으며, 관객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건네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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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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