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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로이터와 현지매체에 따르면 이날 '국가 영웅의 날'을 맞아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프라보워 대통령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맏딸에게 국가 영웅 칭호가 담긴 명패를 전달했다.
대통령궁은 "중부 자바 출신의 저명한 인물이자 독립 투쟁의 영웅인 수하르토 장군은 독립 시대부터 두각을 나타냈다"고 소개했다. 수하르토의 딸 루크마나는 "아버지가 군인이었기에 (군인 출신인) 대통령께서도 아버지가 하신 일을 잘 알고 계실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이날 수하르토와 함께 국가 영웅 칭호를 받은 10명 중에는 1993년 수하르토 정권 시절 의문사한 노동 운동가 마르시나도 포함돼 있었다. 독재자와 그 독재 정권에 의해 살해당한 희생자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나란히 국가 영웅으로 추대되는 모순을 보여주는 한 편의 부조리극이 이 펼쳐진 것이다.
마르시나의 여동생 마르시니는 시상식 후 기자들에게 "(수하르토가 함께 상을 받는 것에 대해) 무슨 말을 하겠나. 나는 오직 마르시나를 위해서 이곳에 왔을 뿐"이라며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다. 그는 1967년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 영웅인 수카르노로부터 권력을 찬탈했다. 그 과정에서 1965년 군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한다는 명분으로 최소 50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학살했다. 이는 20세기 최악의 집단 학살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 32년간 이어진 그의 '신질서(New Order)' 철권 통치 기간 인도네시아는 서방의 지원을 받으며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군부를 동원한 잔혹한 인권 탄압, 언론 자유 말살 그리고 450억 달러(약 65조 2950억 원)로 추정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정부패와 족벌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촉발된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결국 불명예 퇴진했고 2008년 사망했다.
이런 인물이 국가 영웅 칭호를 받자 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 세력과 희생자 가족들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1998년 당시 수하르토 퇴진 시위에 참여했던 타디우스 프리요 우토모(47)씨는 "우리의 과거 투쟁은 이제 무시당하게 될 것"이라며 "수하르토가 영웅이 되었으니, 그에게 맞서 싸운 우리가 바로 국가의 반역자가 되는 셈"이라고 분노했다.
1998년 폭동 진상조사단장이었던 마르주키 다루스만 전 법무장관은 이번 조치가 프라보워 정부의 미래를 예고하는 위험 신호라고 경고했다. 그는 "프라보워는 이제 영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과거 수하르토가 했던 모든 일(군부의 민간 영역 개입 등)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프라보워 대통령은 취임 1년 만에 무상 급식 프로그램 등 자신의 핵심 공약 이행에 군대를 동원하는 등, 군의 역할을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며 신질서 시대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정치 분석가 케빈 오루크는 "이번 조치는 역사를 세탁하고 일부 권위주의를 복원하려는 시도"라면서도 "이미 민주주의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다시 상자 안에 가두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현재 인도네시아 인구의 절반은 수하르토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거나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동시에 매주 목요일 대통령궁 앞에서 검은 옷을 입고 수하르토 정권 시절 실종된 가족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악시 카미산(목요 행동)' 시위대의 투쟁은 2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현 주소다. 프라보워 대통령이 자신의 장인이자 정치적 스승인 독재자에게 국가 영웅이라는 면죄부를 준 것이 자칫 인도네시아를 더 깊은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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