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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속여 캄보디아 감금 ‘윗선’에 이례적 중형… 단죄 시작한 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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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현 기자

승인 : 2025. 11. 11. 17:44

채무 관계 공범에 "지인 넘겨라" 지시
법원 "장기간 감금 알고도 범죄 시켜"
검찰 구형보다 센 징역 10년형 선고
철옹성같은 캄보디아 범죄단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범죄단지인 '태자단지'가 철조망과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연합
3주 넘도록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감금됐던 26세 황모씨가 지난 2월 5일 구출됐다. 황씨를 캄보디아로 유인한 건 다름 아닌 친구였고, 그 과정에 끝없는 협박의 사슬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엔 이 사건을 체계적으로 기획·분담한 주범이 있었다.

황씨는 지난해 4월 친구이자 자신이 종업원으로 일하던 가게 사장 김모씨(27)로부터 배달 대행업체 운영자 박모씨(26)를 소개받았다. 그 무렵, 김씨와 박씨는 지인으로부터 이 사건 주범인 신모씨(26)를 알게 됐다.

같은 해 11월 신씨는 박씨와 김씨에게 "수입차량 차대번호를 알아내 해외 딜러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구매금을 받을 수 있다. 1인당 몇천만원씩은 가져갈 수 있다"며 동업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업무를 분담할 사람을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두 사람은 평소 알고 지내던 황씨를 택했다. 박씨는 황씨에게 "서울 용산구 자동차 매장에 가서 수입차량 차대번호를 알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황씨가 이를 거절하고 지정된 날짜에 자동차 매장에 가지 않으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신씨는 격분했다. 김씨와 박씨에게 "약속 날짜에 매장에 가지 않아 수입차량 고유코드 해킹비용과 진행비용 합계 6500만원을 손해봤다. 이를 물어내야 한다"고 협박했다. 결국 박씨는 6500만원 채무를 인정하는 금전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를 작성했다.

박씨와 김씨는 돈을 갚지 못했다. 그러던 중 신씨가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황씨 때문에 손해가 났으니 황씨를 캄보디아로 보내면 채무를 탕감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협박은 꼬리를 물었다. 박씨는 황씨에게 "네가 약속한 시간에 매장에 가지 않아 6500만원의 손해를 보는 상황이 생겼으니 네가 절반을 갚아야 한다"고 협박했다. 그러면서 "캄보디아 고급호텔에서 2주간 머물다가 오면 된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관광사업을 추진할 건데 체류 중인 한국인들로부터 사업 계약서를 받아오면 된다. 그렇게 하면 갚아야 할 3000만원을 탕감해 주겠다"고 했다. 황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김씨도 동행시켰다.

그러나 지난 1월 14일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 도착한 황씨를 맞이한 건 현지 범죄단체의 조직원이었다. 황씨는 곧바로 조직원들에게 휴대전화와 여권, 신분증 등 소지품을 빼앗겼다. 황씨의 계좌는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으로 사용됐다. 끔찍한 영상과 사진을 보여주며 '도망치면 이렇게 된다'는 위협도 함께였다. 황씨는 그렇게 3주가 넘도록 캄보디아에 갇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엄기표 부장판사)는 지난달 22일 국외이송유인, 피유인자국외이송,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감금) 등 혐의로 기소된 박씨와 김씨에게 각각 징역 5년과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특히 신씨에겐 검찰이 구형한 징역 9년보다 더 높은 10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신씨는 다른 공범들을 협박해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이 사건 범행에 가담시키고, 분담할 실행 행위 내용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며 "피해자가 캄보디아 현지 범죄조직에 상당 기간 감금될 걸 알고도 국외로 이송하는 등 범행 가담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판단했다.

통상 검찰의 구형은 형사재판 구조에서 사실상 '상한선'처럼 작용한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이번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구형을 초과한 판결을 내린 것은 단순한 '공범'과 '지휘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단순한 공모로 이뤄진 범행이 아닌, 지시가 하달되는 계층적 범죄 구조 속에서 신씨가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의 핵심이다. 결국 물리적 실행 여부보다 범행을 기획·지시하며 전체를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책임이 훨씬 무겁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다.
손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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