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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항거 의병 첫 연합 ‘서울진공작전’펼친 13도창의군 결성, 올 12월의 독립운동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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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혁 기자

승인 : 2025. 11. 2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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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도창의군 서울진공전 일러스트 /국가보훈부
국가보훈부는 일제에 항거에 전국 각지에서 싸우던 의병들이 처음으로 연합해 '서울진공작전'을 펼친 '13도창의군의 결성'을 2025년 12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

1907년 한일 신협약(韓日新協約) 강제 체결 이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해산 군인 가운데 일부가 의병에 참여하여 대일 의병 항쟁은 더욱 체계화됐다. 관동 의병대장 이인영(李麟榮·1868~1909)이 중심이 되어, 전라, 충청, 경기, 강원, 평안, 함경도 등 13도 의병 부대는 연합군을 조직했다. 1만명 규모의 의병이 지평과 양주에 집결해 서울로 진격, 일본 통감부를 타격하고 일본과 맺은 조약의 파기, 친일 정부의 축출 등이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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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13도창의군의 형세 /국가보훈부
의병 연합군은 여러 전투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후속부대의 본진 도착 지연과 탄약 부족 등으로 서울 진공이 어려워졌으며, 일본군의 대대적 탄압이 이어지면서 민긍호(1962년 대통령장)·이강년(1962년 대한민국장)·허위(1962년 대한민국장)·이은찬(1962년 대통령장)·이인영(1962년 대통령장) 등 핵심 지도부가 잇따라 전사하거나 체포·순국했다.

13도창의군은 비록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최초의 전국적 연합의병 조직을 구축, 무력투쟁과 외교운동을 병행했다. 실제로 각국 영사관에 통문을 보내 일본의 불법을 고발하며 의병을 국제법상 전쟁단체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했다. 이러한 활동은 장기간 지속된 의병운동의 역량을 보여주었으며, 나아가 이후 국내외에서 치열한 무장투쟁 운동이 전개되는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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