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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어디 있니”…홍콩 아파트 화재,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눈물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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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5. 12. 02. 09:05

Hong Kong Fire <YONHAP NO-3654> (AP)
지난달 26일 발생한 끔찍한 화재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홍콩 타이포 지구 왕푹 코트 인근에서 1일(현지시간) 시민들이 꽃을 놓으며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AP 연합뉴스
77년 만의 최악의 화재로 기록된 홍콩 왕푹 코트 아파트 화재 참사 현장의 연기는 걷혔지만, 타국에서 묵묵히 일해온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멍이 들었다.

2일(현지시간) AFP에 따르면 지난 주말, 홍콩의 빅토리아 공원과 센트럴 지구에는 수백 명의 필리핀 및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노동자들이 모여 통곡과 기도로 일요일을 보냈다. 이들은 이번 화재로 연락이 두절된 친구들이 제발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빅토리아 공원에 모인 이들은 "충성심과 용기를 보여준 이들에게 최고의 존경을 표한다"는 현수막을 걸고 찬송가를 불렀다. 15년째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수다르시는 "친구 두 명이 아직 실종 상태"라며 눈물을 글썽였고, 드위 사예크티(38)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런 비극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왕푹 코트 아파트 화재로 인한 전체 사망자 150여 명 가운데 중 최소 10명이 이주 가사노동자로 확인됐다. 인도네시아 영사관은 자국민 9명이 사망하고 42명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으며, 필리핀 영사관 역시 1명의 사망을 확인하고 7명의 생사를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37만 명에 달하는 홍콩 내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고령화된 홍콩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인력이지만, 재난 앞에서는 가장 취약한 존재였다.

슬픔 속에서도 화재 당시 온몸으로 고용주의 생후 3개월 된 아기를 감싸 안아 구한 필리핀 출신 로도라 알카라즈의 영웅적인 이야기는 이주민 사회에 큰 자부심과 위로가 되고 있다. 돌로레스 발라다레스 '홍콩 필리핀 연합' 의장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극은 피할 수 없었다. 필리핀 영사관은 고향에 10살 난 아들을 두고 떠나온 마리안 파스쿠알 에스테반 씨가 이번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고 확인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화마를 피한 생존자들의 상황도 처참하다. 아시아 이주민 조정 기구의 쉴라 테비아 대변인은 "50명 이상의 생존자가 도움을 요청해왔다"며 "이들은 신분증과 여권이 모두 불에 탔고, 당장 갈아입을 속옷조차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테비아 대변인은 "생존자들은 극심한 트라우마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고용주를 위로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아픔은 돌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 정부는 희생자 유가족에게 20만 홍콩달러(약 378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활동가들은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주 여성 쉼터인 베슌 하우스의 에드위나 안토니오 이사는 "홍콩에 남겨진 생존자들은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며 "이들은 고향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유일한 가장인 경우가 많다. 이주 노동자들을 포함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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