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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가 지나간 자리”…12·3 비상계엄, 국민들이 떠올린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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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준 기자 | 김홍찬 기자 | 김태훈 기자

승인 : 2025. 12. 03. 18:58

12·3 비상계엄 1년…각계각층 시민들
군 전역 직전 계엄 사태 직면한 서동민씨
집회 참가자에 무료 음료 제공한 박다솜씨
계엄 선포 직후 국회로 달려간 김난희씨
대학생 신분으로 계엄 저항한 심명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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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지 1년이 흘렀다. 야심한 시간 갑작스레 선포된 계엄령은 2시간 30분 만에 해제됐지만 그 충격은 국민들의 일상 곳곳에 남았다. 아시아투데이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비상계엄 사태를 맞았던 시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자가 처한 환경은 달랐으나 당시 엄습한 '공포'와 1년간 체감한 일상의 '소중함'은 비상계엄을 접한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이었다.

◇ 군인 신분으로 마주한 비상계엄

서동민씨(28)는 군 전역을 하루 앞두고 비상계엄 사태를 맞았다. 마지막 밤이라며 늦은 시간까지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서씨는 "처음 뉴스를 보고 딥페이크인줄 알았다. 뉴스를 보는 내내 소대원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인근 부대 인원들이 출동 대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정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가족과 지인들의 연락도 이어졌다. '괜찮냐', '어떤 상황이냐' 등 서씨의 상황을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군인 신분으로 비상계엄 사태를 직면한 서씨는 불가항력적인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서씨는 "군대라는 조직은 개인의 개성과 사상보다는 집단의 획일화된 목적 수행이 우선이지 않냐"며 "만약 출동을 한다면, 혹은 복무가 연장된다면 어쩌나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무기력함이 느껴졌다"고 고개를 저었다.

서씨는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 예정대로 전역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본 서씨는 "비상계엄이 꽤나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취업과 여행 등 바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았고,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비상계엄이라는 큰 상흔에서 회복되고 있다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 집회 참가자들에게 커피 나눠주던 카페 사장

비상계엄 해제 후 수많은 인파가 국회 앞으로 집결했다. 비상계엄 시도에 저항한 집회는 수개월 동안 이어졌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다솜씨(41)는 모든 순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박씨는 "가게 때문에 집회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국회 인근 집회 참가자들에게 매 주말마다 커피와 핫초코 300잔 이상을 무료로 제공했다.

얼마 후 인근 카페들도 음료를 무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감사 인사를 전하며 미리 수십 잔의 커피 값을 계산하고 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박씨는 이를 '선한 영향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선한 영향력이 확산되는 걸 느꼈다"며 "시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일상 뒤로 한 채 국회로 향한 엄마

20대 자녀를 둔 엄마이자 가정주부인 김난희씨(62)는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걸 보며 대학시절을 떠올렸다. 김씨는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곧장 국회로 향했다. 현장에 나가며 '죽을 각오'까지 불사했다고 밝혔다. 그에게 민주주의란 대학시절부터 선후배와 함께 지켜온 가치였다. 그는 "자녀들에게 이를 물려주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수개월간 집회에 참석하느라 잠시 일상과 멀어지기도 했다. 김씨는 "가족들에게 밥도 잘 못 챙겨주고, 빨래도 많이 밀려 미안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사태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다시 가정주부로 돌아가야 한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과 딸, 남편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 밀린 과제 풀던 중 닥쳐온 '공포'

2024년 12월 3일, 한창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대학생들도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수도권 소재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심명준씨(21)는 "도서관 열람실에는 TV도 없고, 재난문자가 온 것도 아니라 친구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로 계엄 선포 사실을 알게 됐다"며 "포고령에 적힌 무서운 문구를 확인하고서야 공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학생들은 시험 준비도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갔다. 캠퍼스 게시판에는 비상계엄을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었고, SNS 등 곳곳에 성명문이 올라왔다. 심씨는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계엄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심씨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던 시간"이라며 "지금은 다소 안정을 되찾았지만, 더 이상 부당한 공권력으로 공포에 떨지 않는 민주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최민준 기자
김홍찬 기자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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