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웨토 더비 8만 관중이 공유하는 '도시의 기억'
상업적 리그의 성공과 풀뿌리 인프라의 여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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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축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분절된 축구 구조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인종별로 분리된 리그와 협회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낼 수 없었고, 흑인 지역에는 제대로 된 구장이나 학교 체육 시스템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1991년 통합 협회 SAFA가 출범하고 1992년 FIFA 복귀 승인을 받던 순간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남아공 축구의 재건은 공정한 무대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었고, 이 역사적 맥락은 지금도 남아공이 유소년 시스템과 스포츠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는 왜곡된 출발점으로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199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은 단순한 트로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종 통합 이후 대표팀이 처음으로 대륙 정상에 서는 장면은, 한 사회가 자신에게 부여된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며 단단한 공동체적 신뢰를 쌓아 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우승의 환호와 함께 남겨진 그 장면은 지금도 남아공 축구 정체성의 근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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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는 안전과 운영 측면에서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되었지만, 이후 몇몇 경기장은 지역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유지비만 과도하게 들어가는 화이트 엘리펀트 논란에 휩싸였다. 이는 대형 국제 이벤트를 위해 지어진 시설이 일상의 규모와 맞지 않을 때 어떤 부담을 남기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였고, 월드컵이 남아공에 남긴 유산이 화려함과 한계를 동시에 품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 시간 동안 남아공이 국가적 자부심을 회복했다는 점이다. 대회 기간 도시의 공기는 이전과 다른 온도를 띠었고, 축구는 경제나 정치보다 먼저 사람들의 일상을 하나로 묶는 매개가 되었다. 지금 남아공을 다시 조별리그에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들은 언제나 축구를 통해 사회적 온도를 드러내는 나라였고, 이번 대회에서도 그 결은 여전히 살아 있다.
리그 축구의 체질은 남아공 대표팀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PSL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상업화에 성공한 리그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카이저 치프스와 올랜도 파이러츠가 만드는 소웨토 더비는 경기 장소와 시기마다 차이가 있지만, FNB 스타디움에서 열릴 때는 8만 명에 가까운, 때로는 그 이상을 기록하는 대규모 관중이 몰리며 지역의 공동체 문화를 압축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노란색과 검은색의 물결은 단순한 팬 문화라기보다 도시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는 방식에 가깝다. 더비의 날 들려오는 노래와 환호는 남아공 축구의 사회적 구조를 설명하는 데 책 한 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마멜로디 선다운스는 리그를 넘어 대륙까지 지배하는 팀으로 성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현대적인 패싱 축구를 도입하며 PSL의 전술적 기준을 끌어올렸다. CAF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통해 확보한 자신감과 전술적 안정성은 아프리카에서도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위상은 2025 클럽월드컵에서도 확인되었다. 선다운스는 한국의 울산HD와 조별리그에서 맞붙어 1대0으로 승리했는데, 이 경기는 남아공 리그 챔피언이 아시아 정상급 팀을 상대로도 흔들림 없는 경기 운영을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선다운스가 PSL을 압도하는 동안 리그 전체의 경기력과 선수 육성 시스템도 상향 평준화됐고,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남아공 대표팀의 체질 개선에도 일정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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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략은 강팀을 상대로도 흔들리지 않는 경기력을 만들어내며 202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의 3위를 현실화했다. 그 과정에서 골키퍼 론웬 윌리엄스는 승부차기 상황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 주었고, 중원의 테보호 모코에나는 박스를 오가는 에너지와 정확한 킥력으로 팀의 균형을 잡았다. 템바 즈와네는 공격 흐름을 풀어내는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했고, 퍼시 타우는 속도와 침투로 상대의 수비 라인을 흔드는 공격 옵션으로 기능했다.
전술적으로 남아공은 상대가 점유를 가져가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팀이다. 견고한 수비 블록을 만들고, 중원에서 상대의 리듬을 끊어내며, 공을 확보하는 순간 빠르게 측면을 활용해 역습을 전개한다.
대회 환경에서는 이런 구조가 예상보다 큰 변수가 된다. 한국과의 경기에서도 남아공은 비슷한 전략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중원의 압박을 유지하고, 세트피스에서 득점을 노리며, 한두 번 찾아오는 전환 기회를 효율적으로 마무리하려 할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모코에나와 즈와네가 공을 받는 공간을 얼마나 차단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남아공은 공격 전개의 다양성이 충분히 넓지 않기 때문에, 전술적 압박으로 이 흐름을 관리한다면 위험 요소를 상당 부분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흔들리면 남아공은 짧은 순간에도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팀이다.
남아공 축구를 이야기할 때 도시는 빠질 수 없는 장면이다. 소웨토의 거리와 요하네스버그의 공기는 늘 축구와 맞닿아 있고, 경기장의 환호는 공동체를 다시 묶는 일종의 사회적 리듬처럼 들린다. 더비의 날이면 서로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은 가족들이 함께 경기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이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남아공 사회에서 정체성과 일상의 언어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풍경 뒤에는 여전히 불평등한 인프라 현실이 존재한다. SAFA는 거버넌스 문제와 재정난으로 비판을 받고 있고, 흑인 지역의 유소년 시설은 여전히 부족하다. 리그는 아프리카 최고 수준이지만 풀뿌리 시스템은 그만큼의 견고함을 갖추지 못했다. 남아공 축구는 지금도 성장과 불균형이라는 두 가지 축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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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기보다는 자신들의 견고한 질서를 유지하며 경기를 운영하는 남아공의 방식은 겉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지만 매우 유효하다. 그들의 축구는 눈에 띄는 기술보다 묵직한 결을 지니고 있으며, 한 나라의 역사와 시간이 응축된 방식으로 경기에 투영될 것이다.
결국 남아공을 분석하는 일은 축구만을 분석하는 일이 아니다. 통합의 역사와 도시의 기억, 팬 문화와 불평등의 구조, 그리고 그 속에서도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 대표팀의 리듬까지 읽어내는 작업이다.
한국이 마주할 남아공은 경기장 위의 상대이기 이전에, 축구가 한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시키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조별리그에서 남아공이 어떤 표정을 보여 줄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축구가 이번 대회에서도 아프리카의 현재를 대표하는 하나의 서사로 자리하리라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