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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변화는 그동안 중국·한국의 공세 속에서 존재감이 약해졌던 일본 조선업이 정책 차원에서 방향 전환에 나섰다는 점에서 한국 조선업계도 주목할 흐름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은 1970년대 초반 세계 선박 건조량의 약 절반을 차지했던 대표적 조선 강국이었다. 그러나 석유위기 이후 해운 경기 변동성과 선박 수요의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50년 이상 대규모 설비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한국과 중국이 정부 주도의 투자와 지원 정책을 통해 세계 조선 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현재 일본의 세계 상선 수주 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일본 정부와 업계가 이를 산업 경쟁력 문제이자 국가 기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이번 재건 움직임의 출발점이다. 일본의 이번 조선업 재건 시도는 단순히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10년간 연간 건조량을 두 배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하는 한편, 생산 기반 강화와 기술·설계 역량 회복을 정책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조선업과 해운업의 연계 강화다. 해운 대기업과 조선·설계 관련 기업들이 차세대 연료 선박의 설계 공통화에 합의한 것은, 선박 발주 단계부터 운용까지 국내 산업 간 역할을 묶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한국 조선업이 글로벌 선주를 상대로 수주 경쟁을 벌여온 것과 달리, 일본은 자국 해운과의 결속을 산업 전략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의 차이가 드러난다. 한국 조선업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상위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선종을 중심으로 글로벌 발주를 선도하고 있다. 다만 일본의 이번 움직임은 조선업을 둘러싼 국가 차원의 인식 변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조선업을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니라 해상 물류, 국민 생활, 경제 활동, 안보를 지탱하는 기반 산업으로 규정하며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는 조선업의 경기 변동성과 별개로, 국가가 산업의 '지속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일본 조선업의 재건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일본 정부와 산업계가 조선업을 다시 국가 전략의 중심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한국 조선업계와 독자들에게 일본 조선업은 '과거의 강자' 혹은 '존재감이 약해진 경쟁자'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일본이 정책·산업 구조·해운 연계를 묶은 장기 재건 시나리오를 공식화했다는 점 자체가 변화의 신호다. 한국 조선업 입장에서 이는 위기나 경쟁 선언이라기보다, 동아시아 조선 산업 지형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로 읽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