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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과학기술원(GIST) 정상호 인공지능융합실장 |
생성형 AI 열풍이 산업 전반을 휩쓴 이후, 인공지능 기술은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고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 생성 중심의 활용을 넘어, 로봇과 제조 공정, 설비 제어 등 물리 시스템과 결합하는 ‘피지컬 AI’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산업 현장에서는 AI 도입이 경쟁력을 좌우할 변수로 떠오르면서도, 동시에 데이터, 인프라, 인력 역량 부족이라는 현실적 한계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특히 제조업과 전통 산업 분야에서는 ‘AI를 도입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위해, 어떤 문제에 AI를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정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기술 도입 논의가 앞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대규모 투자 부담과 피로감이 쌓이고, AI 전환이 전략이 아니라 과제로 인식되는 상황도 나타난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GIST R&D혁신기획센터 AI융합실은 AI를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학문과 산업을 연결하는 ‘공통 언어’로 설계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AI대학원이 교육을, AI정책전략대학원이 정책을 맡고 있다면, 이 조직은 GIST의 연구 역량을 국가 단위 대형 R&D 사업으로 구조화하는 기획 축을 담당한다. AI를 특정 분야의 전문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연구 성과를 묶어내는 ‘가속기’이자 ‘연결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상호 인공지능융합실장은 지난 30일 아시아투데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AI 전환의 핵심은 얼마나 빨리 기술을 들여오느냐가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히 정의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실증해 나갈 구조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상호 인공지능융합실장과의 일문일답.
‑ GIST에는 AI대학원과 AI정책전략대학원이 각각 교육과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R&D혁신기획센터 AI융합실은 어떤 문제의식과 역할을 갖고 운영되는 조직인가. 특히 대형 R&D 사업 기획 과정에서 AI를 각 학문·기술 분야와 어떻게 결합시키고 있나.
“AI대학원이 교육을, AI정책전략대학원이 정책을 맡고 있다면, AI융합실은 GIST의 연구 역량을 ‘대형 R&D 사업’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로 묶어내는 기획 사령탑이라 할 수 있다. 저희의 가장 큰 고민은 AI가 특정 전공의 전유물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에너지, 반도체, 바이오 같은 GIST의 강점 분야들이 AI와 만나 국가 전략 사업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대형 사업을 설계할 때 각 분야의 고유한 연구 성과를 존중하면서도 AI를 공통의 ‘가속기’로 투입한다. 기술 성숙도와 정책 방향을 조율해 흩어져 있는 연구 역량을 하나의 전략적 스토리로 구조화하는 역할, 즉 GIST형 융합 R&D의 설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생성형 AI를 넘어 로봇·제조 현장 등 물리 시스템과 결합하는 ‘피지컬 AI’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정책과 대형 R&D 사업 기획 관점에서 이 흐름이 왜 중요한가.
“이 흐름은 단순한 기술 확장이 아니라 AI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다. 그동안 AI가 정보 처리에 집중했다면, 피지컬 AI는 로봇이나 제조 공정 같은 물리 시스템과 직접 연결된다. 정책 기획자 입장에서 이는 매우 중요하다. 연구 성과가 논문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 현장에서 즉각 실증 가능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피지컬 AI는 기계, 전자, 소재 등 다양한 분야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런 융합 구조가 명확할수록 대형 R&D 사업의 중장기적인 확장성을 설계하기 훨씬 유리하다. 결국 피지컬 AI는 선택이 아닌, 연구와 산업, 정책을 하나로 묶어주는 핵심 축이라고 보고 있다.”
‑ 전공과 문제의식이 다른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AI 융합 사업에서, AI가 각 분야를 지배하는 기술이 아니라 ‘공통 언어’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무엇에 가장 신경 쓰나.
“가장 경계하는 것은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나 기술적 지배력이다.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 ‘어떤 AI를 쓰느냐’보다 ‘우리가 함께 풀 문제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데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각 분야의 전문성은 존중하되, AI는 예측이나 최적화 같은 공통의 기능적 도구로만 위치시켜 연구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낮추려 한다. AI가 주인공이 아니라 각 전공의 연구를 가속화하는 조력자가 되도록 역할을 설계한다. 또 처음부터 거창한 융합을 내세우기보다 작은 실증을 통한 공통의 성공 경험을 먼저 만드는데 집중한다. AI가 진정한 공통 언어가 되려면 기술 그 자체보다 문제 정의와 역할 분담, 성과를 나누는 구조가 먼저 단단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믿는다.”
‑ GIST가 보유한 HPC-AI 공용 인프라는 외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이런 연구 인프라가 학생들의 학습 경험과 연구 프로젝트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나.
“GIST의 HPC-AI 공용 인프라는 단순한 고성능 장비를 넘어 연구의 스케일과 사고의 틀을 바꾸는 기반이다. 학생과 연구자들이 처음부터 ‘실제 구현과 확장이 가능한가’를 전제로 프로젝트를 설계하게 됐다. 연산 자원이 풍부해지면서 이론 검증을 넘어 국가 사업이나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복잡한 실전형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됐다. 또 이 인프라는 전공과 세대를 잇는 연구 플랫폼 역할도 한다. 대형 융합 과제를 기획할 때 모두가 같은 인프라 위에서 협업할 수 있다는 점은 전략적으로도 큰 강점이다. 결국 학생들은 AI를 특정 전공 기술이 아닌 공통의 연구 도구로 체득하고, 졸업 후 산업 현장에서도 대규모 문제를 즉각 해결할 수 있는 실전형 인재로 성장한다.”
‑ MIT 등 해외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피지컬 AI 등 전략 분야 공동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글로벌 공동연구는 어떤 전략적 의미를 갖나.
“단순한 연구자 교류가 아니라 ‘글로벌 수준의 연구 플랫폼’을 구축하는 전략적 과정이다. 피지컬 AI 같은 거대 담론은 단일 기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기획 단계부터 해외 파트너와 공동 기획·검증·확장을 전제로 연구 구조를 설계한다. 이를 통해 우리 연구의 문제 정의와 성과 기준을 글로벌 표준에 맞추고, 향후 대형 국제 공동 펀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완성도를 확보한다. 인재 양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학생들이 글로벌 공동연구 안에서 서로 다른 연구 문화를 경험하며 ‘일하는 법’ 자체를 배우기 때문이다. 목표는 국제 연구 생태계에서 문제 정의를 함께 주도하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 광주가 ‘AI 중심도시’를 표방하는 가운데, 지역 기업 및 창업 생태계와는 어떻게 협력하고 있나.
“연구 기획 단계부터 지역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개방형 설계’를 지향한다. 기술을 완성한 뒤 이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역 산업 수요를 반영해 함께 실증하고 사업화하는 구조다. 기업은 기술 리스크를 낮추고, 연구자는 현장에서 성과를 검증하며 자연스럽게 기술 이전과 사업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의 역할은 산학연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협업 플랫폼을 설계하는 것이다.”
‑ 제조업 등 전통 산업 현장에서 AI 전환이 쉽지 않다. 한국 기업들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많은 기업들이 AI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데이터나 인프라 이전에 ‘AI를 어디에, 왜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정의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특정 기술이나 솔루션을 도입하는 것보다, 현장의 문제를 AI 관점에서 다시 구조화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하려 하기보다, 불량 예측이나 공정 최적화, 설비 이상 감지처럼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영역부터 작은 단위의 실증과 반복을 통해 성공 경험을 쌓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 현장을 이해하는 인력과 AI를 이해하는 인력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한국 기업들의 AI 전환은 ‘얼마나 빨리 도입하느냐’가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히 정의하고 이를 해결할 구조를 만드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AI 기술 발전 속에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AI를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잘 아는 영역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해주는 도구로 바라봐 달라. 기술을 완벽히 몰라도 괜찮다. 풀고 싶은 문제만 명확하다면 이미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완벽한 계획보다 작은 실험을 통해 빠르게 수정해 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AI는 우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도록 돕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