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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고 키스하고 말을 거는 ‘살아 있는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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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03. 02. 15:28

세계적 현대미술가 티노 세갈 국내 첫 개인전
리움미술관서 3일 개막
관객이 작품이 되는 '구성된 상황'
티노 세갈의 구성된 상황이 펼쳐지는 전시장 입구_포토 김상태_리움미술관 제공
티노 세갈의 '구성된 상황'이 펼쳐지는 전시장 입구. /리움미술관
"디스 이즈 소 컨템퍼러리(This is so contemporary)."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이 외침이 공간을 가른다. 안내 직원처럼 보이던 이들이 갑자기 몸을 흔들며 구호를 반복한다. 영국 출신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티노 세갈의 작품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관람객은 더 이상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보는 이에서 곧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참여자가 된다.

이달 3일 개막하는 세갈의 국내 첫 개인전은 이처럼 '전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회화나 조각 같은 물질 대신, 인간의 몸과 말, 관계만으로 구성된 작업들이 미술관 전체를 점유한다. 작가는 이를 '구성된 상황'이라 부른다.

이번 전시는 25년에 걸친 그의 작업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입구, 로비, 전시장, 야외 정원까지 총 8개의 상황이 이어지며, 일부 작품은 일정에 따라 순환한다.

티노 세갈이 큐레이팅한 리움미술관 소장품_포토 김상태_리움미술관 제공
티노 세갈이 큐레이팅한 리움미술관 소장품들. /리움미술관
전시의 중심에는 대표작 '키스'가 있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들이 둘러싼 공간에서 '해석자'라고 불리는 무용수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천천히 움직인다. 미술사 속 다양한 '키스' 장면을 환기하는 이 퍼포먼스는 청동으로 굳어진 과거의 조각과 지금 살아 움직이는 신체를 대비시킨다. 정지된 형상과 흐르는 시간, 두 개의 조각이 충돌한다.

로비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관객들 사이에 섞여 있던 해석자들이 조용히 다가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건넨다. 누가 작품이고 누가 관객인지 경계는 흐려진다. 어떤 이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어떤 이는 질문을 던진 뒤 사라진다. 전시는 더 이상 '보는 대상'이 아니라 '관계가 발생하는 장'이 된다.

중앙 전시장에서는 바이올린 연주, 노래, 자전거 묘기, 축구 동작이 뒤섞인다. 느슨하게 연결된 움직임과 아카펠라가 만들어내는 낯선 리듬은 일종의 기이한 합창처럼 공간을 채운다.

정원으로 나가면 한 해석자가 관객을 향해 노래를 부른다. 노르웨이 가수 모튼 하켓의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를 열창하는 장면은 공연과 일상의 경계를 다시 흐린다.

티노 세갈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티노 세갈. /사진=전혜원 기자
세갈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남지 않는 것'이다. 그는 사진과 영상 기록은 물론, 도록 제작도 거부한다. 작품은 오직 경험과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판매 역시 계약서 없이 공증인 앞 구두로 이뤄진다. 물질을 남기지 않겠다는 원칙은 예술의 유통 방식까지 바꿔놓는다.

전시를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물질 없이도 조각은 성립할 수 있다"며 "내 작업은 조각의 해체가 아니라, 미술이라는 게임의 지속"이라고 말했다. 이어 "극장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어려워서 내겐 전시장이 더 잘 맞았다"며 "예술은 관객과 함께하는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시선은 동시대 사회로 향한다. "20세기 미술이 산업화를 반영했다면, 지금은 비물질과 관계 중심의 시대"라는 설명이다. 생산과 소비를 전제로 한 기존 미술 시스템을 비켜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그 순간의 감각을 작품의 핵심으로 삼는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전시는 다소 낯설고, 때로는 불편하다. 무엇을 봐야 하는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기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세갈의 작업은 힘을 발휘한다. 관객은 질문을 받는다. 이것은 무용인가, 전시인가, 아니면 관계인가. 전시는 6월 28일까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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