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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통역 이연향 전 국무부 국장 “김정은, 싱가포르서 상당히 잘 대처…통역은 회담 공기 조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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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6. 03. 27. 06:09

김정은 첫 무대 뒷이야기… "목소리와 속도 조절로 긴박한 회담장 공기 설계"
"오바마는 법률 문장, 트럼프는 빠른 전환"…'극과 극' 화법
팬데믹 4주 만에 원격 정상회담 구축…"외교 멈출 수 없다는 판단"
이연향 국장
이연향 전 미국 국무부 통·번역국 국장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한국무역협회(KITA) 워싱턴 사무소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실상 첫 국제무대였던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안정적으로 대응했다고 이연향 전 미국 국무부 통·번역국 국장이 밝혔다.

이 전 국장은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한국무역협회(KITA) 워싱턴 사무소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무대에 처음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저는 (상황을) 잘 다뤘다. 대처를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이연향 전 트럼프 통역·국무부 국장 "목소리 떨리면 회담도 흔들려"…싱가포르서 분위기 조율에 주력

이 전 국장은 당시 상황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극도의 긴장 상태"로 규정했다. 그녀는 "정상들도 긴장하고 저 역시 긴장했지만, 통역사가 흔들리면 회담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하고, 속도와 리듬을 조절해 차분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역은 보이지 않지만, 회담의 흐름과 공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며 "그 점에서 외교 통역은 단순 전달을 넘어선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미북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미·북 정상회담 확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왼쪽에 이연향 미국 국무부 통·번역국 국장이 보인다./AP·연합
◇ "두 사람 분위기는 좋았다"…트럼프·김정은, 솔직하고 화기애애

이 전 국장은 싱가포르와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 그해 6월 30일 판문점 회담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간 관계에 대해 "두 사람의 대화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좋았다"며 "회담마다 대외적 분위기는 달랐지만, 두 사람은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고 전했다.

이 전 국장은 "두 정상 모두 매우 솔직했고,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보려는 의지가 있었다"며 "딜이 성사되느냐는 또 다른 복합적인 문제지만, 개인적 상호작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영어 잘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외교 통역의 핵심은 메시지 구조 파악

이 전 국장은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담 후 북한 측 통역이 교체된 배경을 묻는 말에 즉답을 피했다. 다만 그녀는 "외교 통역은 영어를 잘하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말의 중심과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나무로 비유하면 줄기(핵심 메시지), 가지(논리), 잎(표현)을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며 "이 구조 없이 전달하면 듣는 사람이 다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때문에 외교 통역은 분석력과 판단력이 가장 중요한 분야"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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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오른쪽에 이연향 미국 국무부 통·번역국 국장이 보인다. 사진은 북한 노동신문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다음 날 보도한 것./연합
◇ 평양 출신 모친·조명록 대표단 통역…미·북 대화로 이어진 개인적 인연

이 전 국장은 자신의 경력과 미·북 외교 현장에서의 인연과 관련, "캘리포니아 시절부터 국무부와 협력하며 북한 관련 회담 통역에 참여했고, 2009년 국무부 입성 이후 뉴욕 미·북 접촉과 평양 방문 등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2000년 10월 조명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던 역사적 장면과 관련해 "당시 북한 대표단이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점차 신뢰를 보이며 통역을 맡겼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어머니가 평양 출신이어서 북한 말과 문화에 익숙했고,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며 "미·북 정상회담 통역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접촉하면서 자연스럽게 밝게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됐다"며 "외교 현장에서는 인간적 신뢰도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외교 통역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역사적 순간을 연결하는 역할"이라며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였다"고 말했다.

◇ 오바마는 '법률 문장', 트럼프는 '빠른 전환'…대통령마다 다른 통역 난도

이 전 국장은 통역 난도가 높은 지도자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을 꼽았다.

그녀는 "오바마 전 대통령은 문장이 법률 문서처럼 길고 복잡해 논리 구조를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고 속도가 빠르고 주제가 점프하지만, 내부에는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며 "통역사는 그 보이지 않는 고리를 찾아 보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경우 모두 통역사에게 매우 높은 수준의 판단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미북 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뒤에 이연향 미국 국무부 통·번역국 국장이 보인다./AP·연합
◇ "잘해도 티 안 나고, 틀리면 치명상"…외교 통역은 사명감의 영역

이 전 국장은 외교 통역의 특성을 "리스크가 극도로 높은 직업"으로 규정했다. 그녀는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작은 오해만 생겨도 통역사의 평판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며 "노출이 많기 때문에 부담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 때 통역 논란을 언급하며 "외교적 수위를 낮춰 전달했음에도 통역 탓으로 돌려진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 때문에 실력 있는 통역사들이 외교 현장을 기피하기도 한다"며 "그럼에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결국 사명감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연향 국장
이연향 전 미국 국무부 통·번역국 국장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한국무역협회(KITA) 워싱턴 사무소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백악관·국방부까지 지원…60개 언어·1000명 운용 통·번역 허브

이 전 국장은 국무부 언어지원국의 구조에 대해 "약 60개 언어를 커버하며 정규직 약 80명과 계약직을 포함해 약 1000명 규모의 통·번역 인력 풀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모든 통역사는 시험과 평가를 거쳐 등급화되고, 회의 수준에 따라 배정된다"며 "백악관·국방부·재무부 등 전 연방정부의 고위급 통역을 지원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또 자신이 맡았던 직책이 언어지원국 국장이자 고위공무원단(SES)으로 연방 공무원 최고위급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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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2018년 10월 7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 왼쪽에 이연향 국무부 통·번역국 국장이 보인다./국무부
◇ 팬데믹 4주 만에 원격 통역 체계 구축…정상회담도 화상 대응

이 전 국장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경험을 "가장 긴박했던 순간 중 하나"로 꼽았다. 그녀는 "모두 집으로 돌아갔을 때 바로 원격 통역 시스템 구축을 지시했다"며 "소프트웨어(SW)를 테스트하고 교육을 진행해 4주 만에 화상 정상회담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어 "기술에 대한 반발도 있었지만, 준비되지 않으면 외교 기능이 멈출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며 "결국 준비된 조직만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 AI 시대에도 외교 통역은 인간 책임…보안·정확성이 관건

이 전 국장은 인공지능(AI)이 통·번역 업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기술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지만 외교 현장에서 완전 대체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녀는 "AI는 자연스럽게 번역하지만, 오류가 섞일 가능성이 있다"며 "국무부에서는 모든 결과물을 반드시 인간이 검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교는 뉘앙스와 책임이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 통역의 역할은 계속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북 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오른쪽이 이연향 미국 국무부 통·번역국 국장. /연합
◇ 혁명 전 이란에서 배운 국제 감각…2009년 국무부 합류의 배경

이 전 국장은 어린 시절 외교관이었던 부친(국방무관)을 따라 이란에서 생활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녀는 "당시 이란은 매우 개방적이고 발전된 사회였지만 혁명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며 "국가의 운명이 지도자와 정책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를 직접 봤다"고 말했다.

이 전 국장은 "2009년 이화여대 교수 시절 국무부로부터 한국어 외교 통역의 질 문제 해결을 요청받고 합류하게 됐다"며 "사명감과 도전 정신이 결정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 "안 된다보다 어떻게 할까"…청년 세대에 주문한 열린 사고

이 전 국장은 청년 세대에 대해 "직업보다 사고방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며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될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AI 시대에는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되기 때문에 적응력과 학습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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