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기업 인사이트] K-우주를 위한 시장 설계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401010000290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6. 04. 01. 17:35

김영주 부산대 무역학부 교수
김영주 부산대 무역학부 교수
우리나라의 우주정책을 보면, 여전히 우주를 '개발 과제'의 집합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발사체 개발, 위성 개발, 탐사 계획, 부품 국산화 같은 기술 과제는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그 기술을 시장으로 연결하는 장치는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정부는 우주산업을 신성장 동력이라고 말하지만, 구체적인 제도 설계를 들여다보면, 연구개발 지원과 실증 사업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주항공청은 2025년과 2026년 업무계획에서 민간 주도의 우주경제, 정부의 민간 제품·서비스 직접조달, 공공위성의 국내 발사체 우선활용, 누리호 정기 발사 블록바이 계약(block buy contracting) 등을 방향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방향 제시가 아니라, 그것을 실제 시장질서로 얼마나 빠르게 굳혀 내느냐에 있다.

우주비즈니스의 성패는 기술개발 그 자체보다, 누가 첫 고객이 되어 주고, 누가 실적을 만들어 주느냐에 달려 있다. 발사 서비스, 위성 제작, 위성 데이터 활용 사업은 모두 신뢰 산업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첫 계약이 없고 반복 수요가 없으면 기업은 투자 회수를 계산할 수 없고, 금융은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며, 해외 고객은 실적 없는 회사를 믿지 않는다. 이처럼 우주산업 육성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시장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시장 부재가 다음과 같이 산업 전반의 성장 경로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R&D 편중의 문제다. 정부 지원이 과제 선정과 개발 완료에 집중되면 기업은 자연히 '기술을 만드는 법'에는 익숙해지지만, '서비스를 팔고 반복 공급하는 법'에는 익숙해지기 어렵다. 두 번째로는 사업실적의 공백이다. 첫 발사, 첫 납품, 첫 운용실적이 없으니 민간 자본도 뒤따르지 못한다. 세 번째는 수출 패키지의 부재다. 우주사업은 기술 하나만으로 수출되는 산업이 아니다. 발사, 운영, 금융, 교육, 외교가 함께 움직여야 비로소 계약이 성사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우주를 연구개발 사업으로 보려는 관성이 강하고, 산업정책과 수출정책, 금융정책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결국 필요한 것은 기술개발 자체가 아니라 시장을 만들어 내는 제도 설계다. 이 점에서 미국과 프랑스의 사례는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미국 NASA는 2000년대 중반부터 민간 기업에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제우주정거장(ISS) 보급과 같은 실제 수요를 민간 서비스 구매로 연결하는 방식을 취했다. 상업궤도수송서비스(COTS) 프로그램에서는 전통적인 원가보전식 조달과 달리 기업에 설계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정해진 단계별 목표를 달성했을 때에만 대금을 지급하는 구조를 도입하였다. 정부가 직접 로켓을 만드는 대신, 필요한 운송 서비스를 민간으로부터 안정적으로 구매함으로써 기업의 초기 실적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시장 형성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NASA는 사실상 초기 핵심 수요자(anchor tenant)로 기능하였고, 민간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비용 절감, 재사용 기술, 운영 효율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프랑스 역시 국립우주연구센터(CNES)를 중심으로 기술개발, 상업화, 수출 지원을 함께 추진하였고, 이러한 기반 위에서 아리안스페이스가 상업발사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공적 수출보증기관(Bpifrance)은 국가 보증을 바탕으로 수출금융과 보증수단을 지원하여 우주기술이 실제 해외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직도 '개발 성공=산업 성공'이라는 단순한 등식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다. 발사체를 개발했다고 해서 발사 시장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고, 위성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데이터 서비스 시장이 저절로 확대되는 것도 아니다. 기술은 있는데 시장은 작은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문제의식의 확인이 아니라, 이를 시장 형성으로 구체화하는 일이다. 첫째, 우주산업 지원의 무게중심을 단발성 보조금에서 장기 조달계약으로 옮겨야 한다. 둘째, 공공수요를 활용해 발사·위성·데이터 서비스 분야의 초기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K-방산에서 효과를 본 것처럼 수출금융, 보험, 기술지원, 운용교육, 정부 간 협력을 결합한 G2G 협력모델을 우주산업에도 도입해야 한다. 넷째, 발사·위성운용·데이터 활용 등 우주산업의 모든 단계에서 민간이 예측가능한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우주는 더 이상 과학기술정책의 부속물이 아니다. 제조업, 데이터 산업, 통신, 국방, 금융, 외교가 동시에 얽힌 종합 산업이다. 성장 잠재력이 큰 산업일수록 정부의 역할은 더 정교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처음 돌아가기 시작할 조건을 설계하는 일이다. 기업이 실적에 비례한 기회를 얻고, 정부는 필요한 서비스에 대해서만 확실한 수요를 제시하며, 수출에서는 금융과 외교가 함께 움직이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보여주기식 우주개발이 아니라, 일자리와 수출을 만드는 K-우주의 길이 될 것이다.

김영주 (부산대 무역학부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