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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의 중국 정치·산업 四季] 보아오포럼에서 재확인된 ‘자립자강’…미·중 기술패권의 현주소와 공급망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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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4. 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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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 중국경영연구소 부소장·동국대 겸임교수
흔히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이라 불리는 보아오포럼(Boao Forum for Asia)은 2001년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통합과 연대를 기치로 출범했다. 매년 3월 중국 최남단 하이난다오(海南島)의 작은 어촌 마을 보아오(博鰲)에 전 세계 정·재계 및 학계 리더들이 모여드는 이 행사는, 단순한 경제 회의를 넘어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대내외 정책의 핵심 기조를 국제 사회에 공식적으로 발신하는 가장 중요한 외교·경제 무대 중 하나다. 올해 2026년 보아오포럼 연차총회 개막식 기조연설에 나선 중국 권력 서열 3위 자오러지(趙樂際)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발언은 현재 중국이 직면한 대외 환경과 내부 전략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는 글로벌 자본을 향해 "중국 시장을 개척해 달라"며 개방의 메시지를 내놓는 동시에, 인공지능(AI)과 양자 컴퓨팅 등 첨단 분야에서의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새로운 생산력)' 창출과 '과학기술 자립자강(自立自强)'을 강도 높게 천명했다. 이는 미국의 전방위적인 첨단 기술 통제에 맞서, 국가 주도의 거국 체제(擧國體制)를 통해 독자적인 기술 공급망을 완성하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공식적인 정책 선언이다.

미국은 현재 '마당은 작게, 담장은 높게(Small Yard, High Fence)'라는 기조 아래 동맹국들을 규합하여 중국의 첨단 기술 접근을 봉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산업계에서 도출되는 구체적인 데이터들은 중국의 '자립자강'이 단순한 정치적 구호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산업 지표로 전환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최전선인 AI 반도체 분야가 대표적이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수출 통제로 인해 엔비디아 등 미국산 고성능 AI 칩의 공급이 제한되자,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로컬 기업들이 그 공백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보고서는 2024년 기준 33% 수준인 중국의 자체 AI 반도체 자립률이 오는 2030년에는 80%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제재가 오히려 중국 내 대체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자체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앞당기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기술 자립의 흐름은 반도체 하드웨어를 넘어 국방과 우주항공 등 최첨단 소프트웨어 설계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최근 중국 연구진은 미국의 제재로 인해 서방의 첨단 공학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CAE) 접근이 차단된 상황에서도,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극초음속 무기 체계의 핵심인 스크램제트(scramjet) 엔진 시뮬레이션을 단 1주일 만에 완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물리적인 풍동(風洞·wind tunnel)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고도의 컴퓨팅 기술과 공기역학 설계 능력을 중국이 독자적으로 확보해 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공급망 배제 전선에 현실적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인도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육성을 위해 중국계 자본의 지분 투자를 10% 미만 한도 내에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인도는 미국의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의 핵심 파트너 국가이지만, 초기 반도체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소재·부품·장비에 걸쳐 거대한 경쟁력을 확보한 중국의 공급망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산업 생태계 조성 자체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이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인위적인 디커플링 정책이 개별 국가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보아오포럼에서 재확인된 중국의 '과학기술 자립자강'은 공산당의 강력한 자본 투입과 통제력을 바탕으로, 외부의 제재에 흔들리지 않는 완결된 공급망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기술의 탈동조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시장은 점차 미국 중심의 표준과 중국 중심의 자립 생태계로 양분되는 구조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의 거센 디리스킹 압박 속에서도 우리 주요 기업의 총수들이 같은 시기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CDF)'에 직접 참석해 현지 수뇌부와 스킨십을 이어가는 것은, 이 거대한 '샌드위치' 국면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 산업계의 치열하고 현실적인 줄타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경제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과소평가하던 과거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양분되는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가 함부로 배제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한국만의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냉정하고 치밀한 전략적 레버리지를 다지는 것만이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김동영 (중국경영연구소 부소장 /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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