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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리스크 先반영·공사비 ‘깜깜이 인상’ 논란…현대건설, 8년 연속 정비사업 1위에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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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빈 기자

승인 : 2026. 04. 12. 15:04

전쟁 직후 ‘증액 요구’ 본격화…마천·대조 등 확산
“설계 변경→전쟁 여파”…인상 근거 변경도 의문
협상 기준선 흔들…정비사업 시장 파장 우려도
현대 "사업장 특수성 반영…통상적인 선에서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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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이 미국·이란 무력 충돌 이후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잇달아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면서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회사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불안을 근거로 제시했지만, 주요 건자재 매입 단가 구조가 유사한 경쟁사들이 아직 공사비 인상에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 폭과 시점의 적정성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2019년 이후 7년 연속 도시정비사업 수주 1위를 지켜온 현대건설은 지난해 업계 최초로 연간 정비사업 수주 10조원을 돌파하며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런 위상을 고려하면 현대건설의 공사비 조정 기조는 경쟁사의 후속 대응은 물론 조합들의 협상 기준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조합들의 불만도 커지는 분위기다. 공사비 조정 자체는 업계 전반에서 불가피한 흐름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무력 충돌 장기화 여부가 가시화되기 전 선제적으로 움직였다는 점, 그리고 인상 근거의 일관성 문제까지 함께 제기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사업장별 특수성을 감안할 때, 선제적 조정 요구 자체를 이례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2025년 말 사업보고서 기준 삼성물산 건설부문,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등 주요 건설사의 핵심 건자재 매입 단가는 전반적으로 유사한 수준이다.

현대건설의 경우 레미콘 9만1400원/㎥, 시멘트 10만3000원/톤, 철근 92만2000원/톤으로 집계됐다. 삼성물산은 레미콘 9만1775원/㎥, 시멘트 11만2000원/톤, 철근 90만7750원/톤이었다. 대우건설 역시 레미콘 9만1400원/㎥, 철근 약 92만2000원/톤 수준을 보였다. GS건설도 레미콘 9만1400원/㎥, 시멘트 11만2000원/톤, 철근 92만2000원/톤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핵심 구조 자재 가격만 놓고 보면 현대건설이 상대적으로 높은 원가 부담을 안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다만 사업보고서상 평균 매입 단가만으로 개별 사업장의 공사비 인상 적정성을 단정하기는 어렵고, 설계, 마감 수준, 착공 시점, 공기 지연, 금융비용 등 사업장별 변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대건설은 복수의 정비사업장에서 공사비 증액을 선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 2월 말 미국·이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한 뒤 약 한 달 만인 3월 말부터 서울 주요 사업지에 대한 증액 요청이 본격화했다. 송파구 마천4구역 재개발 사업에는 총공사비를 기존 3834억원에서 6733억원으로 2899억원, 75.6% 증액해 달라고 요청했다.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사업에도 222억원 증액을 요구했는데, 이 사업장은 지난해 공사 중단과 공기 연장 등을 이유로 이미 2566억원 규모의 증액에 합의한 바 있다. 강서구 등촌1구역 재건축 사업 역시 3.3㎡당 공사비를 584만원에서 959만원으로 약 64.2% 인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공사비 인상 근거의 일관성이다. 대조1구역의 경우 최초 공문인 2월 25일자 문서에서는 '설계 변경'을 인상 사유로 제시했지만, 이후 3월 중순과 말에 보낸 추가 공문에서는 미국·이란 무력 충돌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을 핵심 근거로 들었다. 불과 보름여 사이 공사비 조정의 핵심 사유가 달라진 셈이다.

등촌1구역 역시 계약서상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조항을 근거로 공사비 인상이 추진되고 있다. 다만 이미 건설공사비지수 등 객관적 지표에 따라 조정이 가능한 구조가 마련돼 있는 상황에서, 무력 충돌 여파를 반영한 선제적 인상 요구는 조합에 이중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물가 지수 반영 외에 추가 증액이나 공기 연장까지 이어질 경우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혼선이 커지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일정 수준의 공사비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산정 근거와 검증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사업장마다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사비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경우 현대건설의 정비사업 수주 경쟁력에도 변수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대건설은 2019년 이후 7년 연속 도시정비사업 수주 1위를 유지해왔고, 지난해에는 업계 최초로 연간 10조원 수주를 돌파했다. 다만 조합 신뢰가 핵심인 정비사업 특성상 공사비 증액 요구가 반복될 경우 향후 수주 경쟁에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합 입장에서는 대응 여지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공사비 증액 요구를 거부할 경우 계약 해지에 따른 사업 지연 리스크가 크고, 대형 브랜드 시공사를 대체 선정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국토교통부 등 관계 기관이 공사비 조정 가이드라인과 표준계약서 적용 기준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실장은 "2분기 건설시장은 악화한 선행지표와 미국·이란 무력 충돌 여파로 건설기성을 중심으로 부진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며 "에너지 가격 상승과 환율 변동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공사비 상승 압력도 커지는 만큼, 민간 발주 회복을 위한 금융·원가 부담 완화와 함께 공사비 상승 대응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건설 측은 공사비 조정이 단순한 자재 가격 상승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착공 시점 차이에 따른 물가 변동(ESC), 설계 변경,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 적용에 따른 품질 상향 비용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부 현장은 사업 지연에 따른 이자 비용 등 개별 사업장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라며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의 통상적 범위 내에서 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사비 조정은 사업 완성도와 안정적 수행을 위한 협의 과정"이라며 "외형 수주보다 리스크 관리와 브랜드 가치 제고를 중심으로 내실 있는 수주 전략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김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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