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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당장은 중동산과 타산지 원유를 섞어 정제하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정유 인프라 자체를 다시 짜야 하는 구조적 부담이 드러난 셈이다. 한국 역시 중동산 원유와 두바이유 기준 가격 체계에 크게 의존해 온 만큼, 일본의 고민을 남의 일로 보기 어렵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원유 수입의 90% 이상을 의존하는 중동 대신 미국을 중심으로 대체 조달을 늘리고 있다. 미국산은 주로 경질유,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산은 중·경질유 비중이 높아, 중동산 중질유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구축된 일본 정유소와는 성질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다른 산지 원유를 안정적으로 정제하려면 분해설비 증강 등 정유설비 개수가 필요하다. 일본 정유업계에서는 이 과정에 수개월과 수십억엔이 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 정부가 민간비축 완화 조치를 연장하며 시간을 벌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물량 확보가 아니라 '어떤 원유를 현재 설비가 얼마나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느냐'에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문제이자, 한국 정유업계의 미래 시나리오
한국에 이 문제가 더 민감한 이유는 한일 양국의 에너지 구조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 4월 1일 보고서에서 한국의 중동에서 수입하는 원유 비중이 2023년 71.9%까지 다시 높아진 뒤 최근 3년 연속 70% 안팎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같은 보고서는 국내 정유설비가 중동산 중질·고황 원유 처리에 적합한 고도화 설비 중심으로 구축돼 있어, 다른 유질의 원유를 들여올 경우 설비 활용도와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무역협회도 최근 한국의 원유 수입 중 70.7%가 중동산이라고 집계했다. 결국 일본이 지금 겪는 '탈중동 조달은 필요하지만, 정유소는 중동산에 맞춰져 있는' 딜레마가 한국에도 거의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단순한 유가 상승 리스크를 넘어 산업 전반의 비용 문제로 번진다는 점이다. 무역협회는 유가가 10% 오를 경우 한국의 수입액은 2.68% 증가하고 기업 원가는 0.38% 상승하며, 제조업 원가 상승폭은 평균 0.68%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거나 중동산 원유 공급 불안이 장기화하면, 한국도 일본처럼 비축유 방출이나 단기 조달선 변경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 KIEP 역시 중동 리스크를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고의존 집중 구조'의 문제로 규정하며, 원유를 포함한 핵심 품목들이 사실상 단일 지역 종속 구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일본의 '탈중동'은 조달선 몇 군데를 더 확보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중동산 중질유에 맞춰 효율을 극대화해온 정유 시스템을 어느 수준까지 바꿀 것인지,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 수요 감소와 탈탄소 흐름 속에서도 정유 인프라 재투자를 계속할 것인지가 한꺼번에 걸려 있다. 한국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값싸고 익숙한 중동산 원유에 맞춰 설계된 정유 경쟁력이 전쟁과 봉쇄 국면에서는 오히려 취약성으로 돌아온다. 일본이 먼저 맞닥뜨린 이 문제는, 한국 정유업계에도 곧 닥칠 수 있는 현실적인 경고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