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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전쟁이 떠민 아시아의 ‘ 강제 녹색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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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6. 04. 19. 16:22

태국 가정용 태양광 수요 폭발…3000W 시스템 2년 반이면 투자 회수
말레이시아 "에너지 안보는 전략적 우선순위"…프라보워 "자급자족 외엔 선택지 없다"
베트남 재생에너지 비중 13%로 선두
TOPSHOT-PAKISTAN-WAR-IRAN-US-ISRAEL-EN... <YONHAP NO-3614> (AFP)
정전으로 불이 꺼진 가운데 한 가족이 지난 15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자택에서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이란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자 파키스탄 정부는 전력 수급 관리를 위해 매일 저녁 피크 시간대 약 2시간씩 전력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AFP 연합뉴스
이란전쟁으로 치솟은 유가가 저렴한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이 수년간의 기후 정상회담으로도 해내지 못한 재생에너지 전환에 사실상 내몰리고 있다. 녹색 전환이 기후 목표가 아닌, '당장의 생존 문제'가 된 것이다.

19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태국 가정용 태양광 업체 웨이소의 수왓 처드부트 대표는 "주문이 몰리는데 설치 기사 채용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결국 외주 기사까지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매출은 사실상 하루아침에 두 배로 뛰었다. 3000W 규모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연 4500kWh 전력 공급)은 약 2년 반이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폐쇄되기 전, 이곳을 통과한 원유의 약 80%는 아시아로 향했다. 이 원유는 가정·병원의 전기와 냉방부터 공장과 트럭, 여객기들을 움직여왔다. 하지만 이란전쟁 발발 이후 국제 벤치마크 브렌트유는 지난달 배럴당 120달러(약 17만 6100원)에 근접하며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사상 최고치 147.50달러(약 21만 6500원)에 다가섰다.

◇ "에너지 안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전략"
각국 정부의 태도부터 달라졌다. 말레이시아 파딜라 유소프 부총리는 15일 "에너지 안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전략적 국가 우선순위"라고 선언했다. 태국의 에크니티 니티탄프라팟 재무장관은 "저유가 시대는 끝났다"고 못 박았고,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이달 초 "살아남으려면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속해 자급자족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말로만 그치지도 않았다. 태국은 지난달 가정용 태양광 설치 시 20만 바트(약 910만 원)의 세액공제를 도입했다. 에크니티 장관은 가정이 쓰고 남은 태양광 전력을 국가 전력망에 되팔 수 있도록 개방하는 방안도 내비쳤다

원유를 거의 전량 중동에서 수입하는 필리핀은 지난달 24일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총 1.47GW 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22건의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그동안 화석연료 사용에 유연한 입장이던 인도 모디 총리도 탈(脫)석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인도 설비용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섰다.

PHILIPPINES-IRAN-RUSSIA-US-ISRAEL-WAR-... <YONHAP NO-4233> (AFP)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시에라리온 국적 유조선 '사라 스카이'호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필리핀 바탄주 리마이 항에 정박해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필리핀에 70만 배럴 이상 규모의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선박이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AFP 연합뉴스
◇ 한발 앞서 간 베트남…재생에너지 13%가 버팀목
같은 유가 충격이라도 준비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는 크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베트남은 전력의 13%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해 동남아 6대 경제국 가운데 선두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필리핀은 약 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소수 대기업들이 장기 화석연료 계약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제로카본애널리틱스의 유 선 친 선임연구원은 "베트남이 재생에너지에서 앞서 나간 덕분에 이번 이란 위기에서 수억 달러 규모의 가스·석탄 수입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며 "국내 석유·가스에 계속 투자하는 것은 과거에도 그랬듯 글로벌 가격 변동으로부터 방패가 되어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최대 기업 빈그룹이 정부에 최대 규모 LNG 발전소 사업을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로 전환하도록 승인 요청한 사실도 주목된다. 화석연료 고착이 아니라 시장 조건에 따라 방향을 바꾸는 유연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 여전히 가로막는 석탄…"7개국에서 태양광이 이미 더 싸다"
걸림돌도 뚜렷하다. 남·동남아 발전의 주력은 여전히 석탄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2위 석탄 소비국 인도는 전 세계 수요의 약 10%를 차지하며, 2027년에는 연간 14억t(톤), 2030년에는 15억t을 태울 것으로 전망된다. 동남아에서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최대 소비국이고 베트남이 뒤를 잇는다.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가 여전히 건설되고 있고, 위기 속에 일부는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 연간 수천억 달러의 보조금이 이 산업에 투입되고 있다. 제로카본애널리틱스의 에이미 콩 연구원은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7개국에서는 이미 태양광이 석탄보다 싸다"며 "보조금이 석탄에 유리한 경제성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있는데도, 원가 측면에서는 여전히 태양광이 이기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EEFA)의 샘 레이놀즈 아시아 LNG·가스 연구책임자는 "장기 연료·전력 계약이 수십 년간 화석연료 의존을 고착화하고 있다"며 "각국이 수요 증가에 대응해 재생에너지와 저장 설비를 빠르게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는 석탄보다 저렴할 뿐 아니라 건설 기간도 보통 2~5년 짧다. 이란전쟁이 떠민 이 전환을 정책 지원으로 이어갈지, 또 하나의 '놓친 기회'로 흘려보낼지가 남·동남아의 10년 후 경제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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